⑧멜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 2006년)
⑧멜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 2006년)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1.11 14:51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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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사건 피의자의 ‘행복한 시간’

똑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말을 해도 왠지 거부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순순히 따르게 되는 사람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다 맞는 것 같고 반박할 수도 없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경우가 전자이고, 어딘가 조금 부족한 것 같지만 감정적으로 따르고 싶은 경우가 후자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건이 반드시 ‘논리’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적인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에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 유리할 때도 있다고 한다. 똑같은 소재의 뉴스와 멜로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뉴스에서 살인사건을 접할 때마다 ‘왜 우리사회는 사형 제도를 사문화 시키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갖곤 한다. 특히 최근 고시원 살인사건과 같은 기사를 접할 때면 더욱 그렇다. 피의자의 어두운 과거도, 외로움에 힘들어 하며 썼다는 일기의 내용도, 어쩌면 우리 사회가 만든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해설 보도도 일말의 동정심을 낳지는 못한다. 뉴스라는 장르를 통해 접하는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대중이 동정심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가 아닌 멜로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 접하는 사형수 정윤수(강동원)의 모습은 조금 다르다. 대중과 사형수 정윤수 사이에는 문유정(이나영)이라는 시선이 개입한다. 영화 초반, 사형제도 찬반자들에게 공평한 판단(?)의 근거를 주기 위해 보여주는 살인 장면은 유정의 감정 변화와 함께 점점 희석된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윤수와의 면회를 기다리게 되는 유정의 감정, 대화를 통해 알게 되는 불우했던 윤수의 어린 시절 등을 통해 대중은 ‘동정심’을 갖게 된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이다. 때문에 감독들은 자신의 메시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각종 장치를 고르게 되고 그 중의 하나가 ‘장르’인 것이다.

물론 ‘언제’ 말하느냐 역시 중요한 변수이다. 요즘처럼 강력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상황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같은 영화가 대중에게 공감을 얻고 흥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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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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