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 생활이 끝날 무렵, 우리팀은 학교 CICD가 있는 Hull로 이동했다. 학교에 도착해 짐을 풀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는 마리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모레 있을 인포위큰에 학생들을 대표해 미란다와 함께 호스트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두 달 전, 호스트로서가 아닌 게스트로 참여했던 인포위큰을 떠올리며 나는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 나는 15명가량의 게스트들을 만나 포옹과 함께 첫인사를 나눴다. 이미 두 달 전 접했던 프리젠테이션들, 학교 건물을 순회하며 둘러보는 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학교의 장단점을 친구들에게 얘기해주는 시간이었다. 15명의 게스트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됐다. ‘늘 준비해놓은 대사만 읊을 수는 없는거야’.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고 곧 입을 열었다. “CICD에선 자신이 주체가 돼야 한다.
영국의 궂은 날씨 때문에 가이아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20여 개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는 것 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들을 전했다. 차가워 보이는 파란 눈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친구들 목걸이에 내 분홍색 실을 매듭지어주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참 이상했다. 학교에 도착한지 3개월, 나는 한국 땅에서 부모님에게조차 사랑한단 말을 쉽게 해 본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요즘 들어 부쩍 “사랑해”, “고마워”, “왜?” “도와줄게” 등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변화였다.
순간 지난 인포위큰 때 학교를 떠난 친구 세르반이 생각나 난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하지만 곧 그의 손을 맞잡았다. 뭔가 따뜻한 기운, 할로윈의 오싹함은 저만치 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