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내가 학교 호스트라고?
⑦ 내가 학교 호스트라고?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1.05 17:04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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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맞은 인포위큰과 할로윈

가이아 생활이 끝날 무렵, 우리팀은 학교 CICD가 있는 Hull로 이동했다. 학교에 도착해 짐을 풀고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프로모션을 담당하고 있는 마리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모레 있을 인포위큰에 학생들을 대표해 미란다와 함께 호스트로 활동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뜻밖의 제안, 학교에 대한 호기심을 안고 찾아오는 친구들을 위해 나는 학교의 얼굴이 돼야 했다. 자신이 없었지만 나는 “no problem”이라고 답해버렸다. 화창한 날씨와 함께 시작한 인포위큰, 느낌이 좋았다. 한편 이 날은 할로윈 데이라서 학교 내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두 달 전, 호스트로서가 아닌 게스트로 참여했던 인포위큰을 떠올리며 나는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끝나기도 전 나는 15명가량의 게스트들을 만나 포옹과 함께 첫인사를 나눴다. 이미 두 달 전 접했던 프리젠테이션들, 학교 건물을 순회하며 둘러보는 시간,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이전에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던 설명들이 귀에 들어왔고, 여전히 영어에 서툰 내가 한국인 게스트 곁에서 선생님 얘기를 통역해주기도 했다. 그러던 중 선생님이 함께 호스트로 활동 중인 미란다와 나를 위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학교의 장단점을 친구들에게 얘기해주는 시간이었다. 15명의 게스트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이 됐다. ‘늘 준비해놓은 대사만 읊을 수는 없는거야’.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고 곧 입을 열었다. “CICD에선 자신이 주체가 돼야 한다.

그러면 원하는 모든 것을 시도해볼 수 있다. 나는 지난 달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지난 주 60명 친구들을 위해 한국요리를 했다. 지금은 또 너희들 앞에서 내 얘기를 하고 있고.” 차분히 하나씩 얘기를 꺼내놓으니 모든 게 쉬워졌다.

영국의 궂은 날씨 때문에 가이아 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20여 개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라는 것 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들을 전했다. 차가워 보이는 파란 눈의 친구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전날 친구들과 만든 할로윈 호박등이 테이블에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 DI 친구들은 귀신 분장을 하고 나타났다. 유독 맘에 들었던 것은 저마다 목에 형형색색 실뭉치 목걸이를 걸고 실을 하나씩 뽑아 친구의 목걸이에 매듭지어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친구들 목걸이에 내 분홍색 실을 매듭지어주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참 이상했다. 학교에 도착한지 3개월, 나는 한국 땅에서 부모님에게조차 사랑한단 말을 쉽게 해 본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요즘 들어 부쩍 “사랑해”, “고마워”, “왜?” “도와줄게” 등 적극적으로 내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변화였다.

할로윈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우린 다이닝홀에 모여 공포영화를 봤고, 퀴즈를 풀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아일랜드에서 온 친구 제이미가 다가왔다. 그는 “오늘 프리젠테이션 좋았어”라며 “덕분에 내년 3월 팀에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며 손을 내밀었다.

순간 지난 인포위큰 때 학교를 떠난 친구 세르반이 생각나 난 잠시 주춤하고 말았다. 하지만 곧 그의 손을 맞잡았다. 뭔가 따뜻한 기운, 할로윈의 오싹함은 저만치 가고 없었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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