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다윈을 기다리며
57) 다윈을 기다리며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9.01.05 17:49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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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있는 연구 대상, <종의 기원>
학문간 장벽을 넘나든 다윈의 영감이 그리워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과학사 불후의 명저인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2009년이 시작되었다. 2009년을 다윈의 해로 하려는 분위기는 다윈이 태어난 영국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곳곳에서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2세기 전에 다윈이 주장한 이론들은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재해석과 분석이 이어지며 여전히 살아 있다. 자연 과학자를 넘어서 경제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등 사회 과학자들마저도 각자 영역에서 진화론적 속성을 찾아나가고 있다.

‘21세기 판 종의 기원’이라고도 불리는 ‘진화발생생물학’은 1984년 초파리의 발생을 조절하는 여러 유전자들이 ‘호메오박스’라고 하는 DNA 염기 서열 부위를 공유한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급부상했다. 이후 인간과 같은 척추동물에서도 이 호메오박스가 발견되었다.

즉, 모든 호메오박스 유전자들은 수억 년 동안 진화가 되어도 여전히 유사하고 기본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이 알려졌다. 초파리와 인간 모두 호메오박스 유전자를 가지지만, 그 외형은 천지차이라는 점이 진화발생생물학에서 의문의 시작이다.

다윈은 동물들의 ‘눈에 보이는’ 외형을 근거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하나의 원시 형태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통찰력을 발휘했다. 오늘날 ‘눈에 보이지 않는’ DNA에 대한 연구 발달에 힘입어 다윈의 주장들이 속속 증명되고 있으니 다윈의 <종의 기원>은 아직도 살아 있는 연구 대상이다.

‘진화 경제학’도 있다. 이는 기술의 도입을 둘러싼 기업의 의사 결정과 이들 간의 경쟁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인데, 실제로 기술 혁신이 일어나 전파되고 소멸되는 과정이 생물 종의 진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다윈의 성(性) 선택 이론도 경제 주체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수컷 공작새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꼬리를 크고 화려하게 만드는 행위와 부유층이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하는 행위의 동기는 거의 같다.

‘진화 심리학’은 동물, 특히 인간의 심리를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살아남기 위한 목적으로, 또 배우자를 선택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한 목적으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진화해 왔다고 본다.

자신의 여자를 향한 남성의 끊임없는 소유욕, 조금이라도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여성의 전략 등은 모두 진화심리학의 연구 결과로 밝혀졌다. 진화론이 가지는 이러한 범학문적 적용 가능성은 다윈이 진화론을 주창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탐험가’ 알렌산더 훔볼트가 쓴 책을 읽은 것을 계기로 다윈은 진화론의 근거가 되는 수많은 증거 자료를 수집하는 자연 탐사를 떠나게 되었다. 한편,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이 쓴 <지질학의 원리>에 나오는 ‘현재는 과거의 열쇠’라는 아이디어를 다윈은 생물계에도 동일하게 적용했다. 또, ‘수학자이자 경제학자’ 토머스 멜서스가 <인구론>에서 주장한 ‘강자와 적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생존 경쟁 개념을 다윈은 자연계의 동식물에 적용했다.

이렇듯 진화론을 이루는 주요 개념들이 다양한 학문적 기원을 가지고 있으니 다윈은 학문간 장벽을 넘나들며 영감을 발휘한 천재였다. 2009년 시작부터 난장판이 된 국회를 보고 있자니, 양쪽의 입장에 모두 통하면서 천재적 해결책을 제시할 ‘정계의 다윈’이 그리워진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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