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부문 당선작] 옵세션 하우스
[소설 부문 당선작] 옵세션 하우스
  • 임연화(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1.07 09:42
  • 호수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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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집을 산 것은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이었다.
집값이 오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돌았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있으면 지금보다 더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거라고 했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서 미리미리 사두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때를 놓치게 된다고도 했다.
회사 휴게실이건, 식당 안에서건, 심지어 화장실 안에서 건, 언제나 화젯거리였다. 집값이 지금보다 더 폭등할 거라는 예측이 동료들의 입에서 자꾸만 흘러 나왔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자신도 서둘러서 집을 하나 장만해 두어야만 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렸다.
결국 남자는 아내 모르게 적금을 해약했다.
더 이상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남자는 서둘러서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그 돈으로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도시 외곽에 있는 집조차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운이 매우 좋다고 했다. 중개업자는 구석에서 장기판을 뚫어지게 들여다보고 있던 작달만한 노인을 큰소리로 불렀다.
노인은 되도록 빨리 집을 팔고 싶다면서 터무니없이 싼 값으로 계약금을 불렀다. 남자는 사기가 아닐까 하고 의심을 했다. 그러나 중개업자와 함께 빨간색 벽돌담이 있는 1층 주택을 안팎으로 보게 되면서 점차 의심을 풀었다.
남자는 집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이 행운을 가져갈지 모를 노릇이었다. 해약한 적금을 냉큼 계약금으로 내걸고 서류들을 작성했다. 모자란 금액은 언제든지 여유가 생길 때 보내라면서 노인은 서둘러 집을 처분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자는 집값이 떨어지더라도 땅값으로 본전은 뽑을 거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리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집을 산 지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남자의 아내는 적금이 해약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해약된 적금 통장 안에 한 푼의 돈도 남지 않았다는 것조차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아내는 남자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상의도 없이 빚을 내줬다고 여겼다. 그래서 남자는 단지 집을 하나 사려고 계약 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집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던 아내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 도시와 떨어져서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교육이 제대로 되겠냐는 거였다. 그리고 자신과 어떻게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모든 일을 제멋대로 혼자서 결정하냐는 비난도 퍼부었다.
처음에는 남자 역시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그저 고양의 앞의 쥐인 마냥 조심스럽게 굴었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아내의 잔소리는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심해져만 갔다.
사사건건이었다. 회식 때문에 늦게 와도 집 이야기를 꺼냈고, 딸아이의 영어 학원비 봉투에 돈을 넣으면서도 했으며, 물가는 오르는데 월급이 자신의 친구 남편에 비해서 너무 작다고 하면서도 조잘거렸고, 심지어 남자의 양발이 뒤집힌 거나 편식조차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결국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자꾸만 시끄럽게 쫑알거리는 아내를 보면서, 전날 보았던 뉴스를 하나 떠올렸다. 잔소리가 지나치게 심하다는 이유로 아내를 칼로 찔러서 죽였다는 어느 가장에 관한 뉴스였다. 남자는 그 뉴스 속의 가장처럼 아내를 죽이면 이젠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연속 드라마를 보면서도 드라마 속 남주인공과 남자를 비교하며 집 이야기를 꺼내자, 남자는 냅다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고서는 칼을 꺼냈다. 남자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아내는 비명을 질렀다.
당신, 뭐하는 짓이에요!
남자는 아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않았다. 대신 칼을 고쳐서 꽉 쥐었다.
여기서 그만 두면 모른 척 해줄게요.
그 말에 남자는 더욱 화가 났다. 칼을 들고 있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남자가 위협적으로 칼을 휘두르자 아내는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서는 싹싹 빌었다. 시끄럽기는 바가지를 긁던 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남자의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칼이 쑥 미끄러졌다. 바지를 붙잡고 있는 아내의 새끼발가락 바로 옆에 떨어졌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됐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내는 재빠르게 칼을 주웠다. 그러고서는 그 칼을 들고서 화장실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혹시 아내가 자신을 찌르지 않을까 걱정하던 것이 무색하게, 내내 화장실 안에서는 울음을 쥐어짜는 소리만 들렸다.
세 시간이 넘도록 아내는 화장실 안에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걱정하던 마음 보다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아서, 베란다에가 결국 소변을 보았다. 배설의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편안해졌다. 지린내가 나는 베란다에 수돗물을 쏟아 붓고서 남자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자 잠이 스르륵 몰려들었다. 남자는 코까지 골면서 신나게 잠을 잤다.
일어나 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시계를 확인해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망할 이 여편네!
욕설을 내뱉으면서 남자는 아내를 찾았다. 하지만 아내는 남자의 부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결국 정장 바지에 이리저리 아내를 찾아봤지만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만이 아니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여행 가방도 사라졌다.
처음에는 며칠이 지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도록 아내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기만 하면 단단히 혼쭐을 낼 거라고 했던 마음 대신에 이젠 제발 돌아오기만을 바라게 되었다. 남자는 아내가 갔을만한 곳을 떠올리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지만 남자는 아내가 갔을만한 곳이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의 친구들조차도 남자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조금도, 단 하나도, 그리고 무엇도.
우연찮게 남자는 아내가 친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아내와 만나는 것을 원했다. 미안하다고 애원하다시피 말하면서 아내와의 대화를 원했다. 아내는 남자와 이야기를 하는 것조차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얼굴을 보는 것은 더더욱 거부했다.
아내의 사촌 동생, 아내의 고모, 아내의 친구,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여러 사람들을 통한 뒤에야 남자는 아내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전화나 직접 대면이 아니라 서류봉투를 통해서였다. 서류봉투 안에는 합의 이혼 신청 동의서가 들어있었다. 무척이나 당연하게도, 남자는 당황했다. 다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끈질기게 계속 전화를 했다. 심할 때에는 하루에 열세 번도 넘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남자와 대화를 원하지 않았다.
망할 여편네 같으니라고!
점점 화가 치밀었다. 남자는 아내 대신에 장모와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장모를 설득하면 아내와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생각과는 다르게 남자는 장모에게서 욕설에 가까운 훈계를 처음부터 들었다. 아내가 얼마나 두려움과 수치심을 느꼈는지 남자가 모른다는 말부터, 손녀의 교육을 위해서는 결코 자네 같은 남자의 곁에 둘 수가 없다는 말까지. 모조리 다.
아내가 없는 말까지 지어내서 한 말까지도 장모가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면 남자는 몹시도 투덜거렸다. 장모가 몹시도 못마땅했지만 일단 가족을 현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남자는 최선을 다해서 변명을 했다. 그래도 장모는 아내와 마찬가지였다. 남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자기 할 말만 실컷 남자에게 퍼붓고 난 뒤, 장모는 일방적으로 인감도장을 찍어서 서류를 돌려 보내달라고 하고서, 전화를 뚝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 왜 여기까지 이르렀으며, 왜 이혼을 준비하는 단계까지 온 것인지 남자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내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 했다.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치닫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었다. 고민하다 못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를 받았다. 딸이었다.
엄마 좀 바꿔주렴.
최대한 다정하게 말을 했다.
엄마는 아빠 전화를 받고 싶지 않다고 하는 걸요.
오랜만에 듣는 아빠의 목소리에 대한 기쁨이나 설렘 대신에 딸아이는 그렇게 딱 잘라 말했다. 일방적으로 전화가 끊겼다.
애 엄마는 대체 애를 어떻게 가르친 거야?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화를 삭힌 후에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딸조차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지금껏 그랬듯이 아내는 끝내 받지 않았다. 결국 문자로 남자는 왜 자신이 아내와 이혼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알려달라고 녹음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자그마한 상자가 회사로 배송 되었다. 아내에게서였다. 달랑 합의 이혼 신청 동의서만 들어있던 전의 봉투와는 다르게 그 상자는 그만큼 무게가 나갔다. 무슨 상자냐고 동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갑작스레 호기심을 보였다.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자꾸만 몸이 불편했다. 결국 아프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빨리 퇴근했다.
집에 들어온 남자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상자를 거칠게 뜯었다. 상자 안에는 이혼 사유들이 A4용지에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11포인트의 신명조로 빽빽하게 채워진 A4용지를 하나하나 넘겨가면서 꼼꼼하게 읽었다. 아내가 적은 이혼을 원하는 이유는 무수하게 많았다. 하지만 대다수가 남자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일이거나 남자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들뿐이었다.
읽다 보니까 화가 났다. 또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고작 이런 사소한 일들 때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을 하려고 하는 아내에게 화가 났다. 그런 줄도 모르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까지 낳은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홧김에 인감도장을 통째로 서류 봉투에다가 넣어서 아내에게 퀵으로 보냈다.
그리고 잊어버렸다.
가정 법원으로부터 호출을 받고서야, 남자는 ‘이혼’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검은색 양복을 차려 입고 넥타이를 단단히 조여 맨 뒤에 구두를 신었다. 지금 집에 혼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감추려고 하는 듯이, 곧 이혼을 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려는 듯이, 잔뜩 신경을 써서 입었다.
유난히 차가 많았다. 가는 데마다 신호가 걸리기도 했다. 덕분에 한참 걸려서 가정 법원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에는 심의 시작 시간이 고작 십 분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허둥지둥 거리면서 서둘러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에 들어간 뒤에야 숨을 골랐다.
맞은편에 아내가 앉아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변한 것이 없었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수다스러웠으며 자그마한 일에도 무척이나 예민하게 굴었다. 심지어 아내는 남자의 길게 자란 손톱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저분하게 왜 손톱을 깍지 않았냐고 야단을 치는 아내 덕분에 남자는 지금 두 사람이 있는 곳이 집 안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되었다.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남자와 아내는 어떤 문제에 부딪쳤다. 딸의 친권과 양육원 문제였다. 남자나 아내나 모두 잊고 있던 일이었다. 다짜고짜 아내는 자신이 딸을 기르겠다고 했다. 대신에 양육비는 받겠지만 위자료는 받지 않겠다면서 제법 관대한 척 말했다. 남자는 반발했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가정 법원에서는 일단 두 사람을 돌려보냈다.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아내는 딸의 친권을 자신에게 주지 않으면, 남자가 칼로 위협했던 일에 대해서 말하겠다고 했다.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그까짓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친권을 놓고 남자와 아내는 격렬하게 싸웠다. 결국 아내는 남자가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했던 일을 판사 앞에서 까밝혔다. 훌쩍훌쩍 눈물까지 짜내면서 친권과 양육권 호소를 하고 있는 아내는 벌레 같았다. 칼을 들었던 사실에 대해서 재판관이 물었을 때, 남자는 단지 홧김에 칼을 들었을 뿐이었다고 했다. 사심은 없고 단지 홧김에 일시적으로만 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당당하게 가슴을 쭉 피고서 그렇게 말했다.
반년이나 지나서야 친권 소송 재판이 끝났다.
딸의 친권과 양육권을 아내가 가져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매달 양육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남자와 아내는 타인이 되었다.
타인이 된 아내는 아량을 베풀듯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딸을 남자와 만날 수 있게끔 하겠다고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거절했다. 딸 스스로가 원하기 전까지는 만나고 싶지 않다면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오기를 짜내서 대꾸했다.
어쨌든 남자는 혼자가 되었다.
이혼과 친권 재판이 진행되었던 동안에 남자의 승진심사일이 가까워졌다. 대리에서 과장으로 진급이 어지간한 사건이 없다면 확실시 되었다고 동료들이 일찌감치 축하의 말을 한 만큼, 행여 이혼 경력과 친권을 빼앗긴 것을 알게 되면 승진을 가로 막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남자는 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승진 발표가 나던 날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빠진 것을 발견했다. 의외의 결과에 넋이 나갔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동료들도 남자의 마음을 이해한 듯이 아무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퇴근 후에 부장이 남자를 따로 불렀다. 아무 말 없이 부장은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남자는 부장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취하자 부장은 남자가 왜 승진이 될 수 없었던 것인지에 대해서 드디어 입을 열었다.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남자의 이혼 소식이 회사 내부에 돌은 지 오래되었다고. 동료들은 남자의 이혼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들을 했었다고.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돈 소문이 바로 아내를 때려서 이혼을 당했다는 거라고. 얼마나 때렸기에 이혼까지 왔냐면서, 동료들은 편을 갈라서 서슴없이 이야기를 했었다고. 그러면서 만약 이러한 이야기들이 떠돌지만 않았다면 남자의 승진은 확실했을 거라고.
부장은 매우 유감스러운 말투로 하지만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듯이 서슴없이 남자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남자는 몹시도 억울했다. 자신은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따라서 당연히 아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차라리 때린 일로 이혼하게 되었으면 억울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지도 않으니 마냥 억울하다면서 부장에게 하소연했다. 부장은 말없이 남자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남자는 안주는 내버려두고 술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떠돌고 있는 소문을 몰랐을 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부장에게 전해 듣게 된 후에는 남자는 자꾸만 주변 동료들의 시선이 신경이 쓰였다. 주변 동료들의 시선만이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자꾸만 거슬렸다. 또 무서웠다.
점차적으로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아무도 남자에게 직접적으로 이혼에 관하여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주변을 자꾸만 살피게끔 되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늘 뒤통수가 간지러웠다. 뒤통수가 간지러워 피가 날 정도로 머리를 벅벅 긁게 되자, 남자는 결국 사직서를 냈다.
부장은 남자를 말리지 않았다. 사직서를 받아서 두 번째 서랍에다가 넣어두었다. 뒤돌아서 나오다가 말고 남자는 부장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나는 정말로 아내를 때리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부장은 대답 대신에 안경 너머로 물끄러미 남자를 한 번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난 다음 날부터 남자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 해봤다. 질릴 정도로 텔레비전도 보았고, 여행도 떠나 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남자는 무척이나 지루해졌다.
어느 날 남자는 자신이 사두었던 집을 생각났다.
노인에게서 미처 지불하지 못한 금액에 대해서 재촉 전화조차 없었기 때문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남자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팔고서 새 집으로 이사 가기로 결심했다.
남자의 옛 집은 내놓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팔렸다. 이제 막 결혼을 한 듯한 젊은 부부가 부동산 중개업자와 함께 찾아왔다. 이리저리 따져 보더니 다음 날 계약서를 작성했다.
새 집으로 떠나는 날에 남자는 옛 집을 뒤도 보지 않고 쫓겨나듯 빠져 나왔다.



노인의 집, 아니, 이제 남자의 집이 된 바로 그 집 앞에 도착했다. 열쇠를 찾아서 자물쇠를 풀었다. 초록색 대문을 밀었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남자는 집이 전에 한 번 와봤을 때보다 크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게다가 정원까지 딸려 있었다. 일 년이나 방치한 집답게 잡초들이 정원 곳곳에 무성히 자라 있었지만, 그것들을 제외한다면, 붉은 벽돌로 지어진 1층 양옥집은 지나치게 좋은 상태였다.
혹시나 잘못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면서 번지수를 확인했다. 몇 번이나 다시 봐도 자신이 산 집이 맞았다. 그래도 지나치게 집이 낯설었다.
아직 집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어차피 딱 한 번 봤을 뿐이잖아. 그러니까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다고.
남자의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굴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이질감을 꾹 참고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새로 깐 장판과 새로 한 벽지만 그나마 사람이 앞으로 살아갈 수가 있는 집처럼 보이게끔 했다.
남자는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반나절 후면 이삿짐이 도착할 예정이었다. 생각했던 이상으로 깨끗하긴 하지만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는 집에 가구를 그대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리 준비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서 대강 눈에 보이는 부분들을 쓸었다. 대강의 청소를 끝내자마자 이삿짐이 도착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가구와 짐을 집 안에다 놓았다.
가구와 짐을 다 정리한 이후에, 남자는 본격적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창고 청소만 남았다. 남자가 창고를 열자마자 악취가 코 안으로 들어왔다. 구역질이 났다.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퉤하고 침을 뱉었다. 입 안에 시큼한 맛이 돌았다. 간신히 진정을 하고 난 후에 남자는 다시 창고로 들어갔다.
놓고 간 것인지 아니면 버린 것인지 창고 안에는 너저분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하나씩 들어서 마당으로 내놓았다. 그동안 악취에 밖으로 빠져나간 탓인지 아니면 코가 마비가 된 것인지 이제는 제법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남자는 창고 안에 있는 책상을 들었다. 가볍게 보이는 외관과는 다르게 책상은 매우 무거웠다. 끙끙 거리면서 억지로 질질 끌어내다가 책상 서랍 하나가 툭 하고 빠졌다. 떨어진 책상 서랍을 주웠다. 남자는 서랍을 들다 말고 저도 모르게 으악 하고 짧게 비명을 질렀다.
서랍 안에는 검고 긴 머리카락 뭉치가 들어있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으로 추정이 되는 긴 머리카락 뭉치였다.
혹시 잘못 본 것이 아닐까 해서 다시 눈을 비비고 봤다. 머리카락 뭉치는 여전히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보았다. 그러나 마땅히 이렇다 할 것은 없었다. 어디다 둘까 하다가 남자는 머리카락이 든 서랍을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남자는 제일 깨끗하고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이곳저곳에 떡을 돌리러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달갑게 남자를 맞았다. 그러면서 어디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는지 물었다. 남자는 대수롭지 않게 번지수를 말했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 집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남자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일층 양옥집으로 이사를 왔다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은 못 들을 것을 들은 사람 마냥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 의아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싶었다. 점점 의심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새로 살게 된 집에는 무언가 있다고.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맞잖아. 그렇잖아. 아니라면 마을 사람들이 저렇게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어. 무엇인가 있어서 그런 거야. 그래. 틀림없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가 없다고. 분명히 뭔가가 있어. 내 집에 분명히 무언가 일이 있었을 거라고.
집 안에 방치된 낡은 서랍 안에 들어 있던 머리카락이 불현듯 떠올랐다. 검은 머리카락. 그래. 머리카락……. 점점 남자는 의심하게 되었다.
살인이 일어났을 거라는, 의심.
그러니까 정말로 집 안에 시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남자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거실 구석에 놓아둔, 서랍 안에 든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내려다 봤다. 그러면서 남자는 집 어딘가에 있을 시체를 상상했다.
망치와 같은 둔기에 머리가 깨져서 죽었을 지도 몰라. 아니야. 목이 졸려서 혀가 쭉 나온 채로 죽어있을 지도 모르지. 어쩌면 검은 봉지 안에 토막이 난 채 담겨 있을 지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래서 그 노인이 재빠르게 판 거야. 그게 아니라면 그 가격에 파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래. 너무나 낮은 가격이었어. 젠장. 망할 사기꾼 같으니라고!
노인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늘 부재중이었다. 덕분에 집 안 어딘가에 있을 시체에 관한 갖은 망상들이 자꾸만 남자의 안에 들어찼다. 남자의 망상은 점점 부풀어 갔다. 꿈에서도 나타났다. 결국에는 길을 걷다가도 생각이 났고 텔레비전을 보다가고 생각이 났으며, 씻을 때에도, 식사를 할 때에도, 자꾸만 스멀스멀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래. 시체는 집 안에 있을 거다!
빨리 찾아서 없애버려야 해. 깨끗하게 없애야만 해.
남자는 공사용 해머 한 자루와 손드릴을 구입했다. 목장갑을 두 개 겹쳐 끼고 난 다음에 남자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꼭 집에 있는 시체를 찾아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집 내부를 비장하게 쏘아보았다.
이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이었다.
집을 위협하는 불길한 시체 따위는 있어서는 안 되는. 가장 의심이 가는 곳은 침대 바로 밑이었다. 낑낑 거리면서 침대를 옆으로 밀쳐낸 후에 장판을 걷었다. 장판을 걷어내자 시멘트 바닥이 보였다. 남자의 눈에는 시멘트가 발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해머로 시멘트 바닥을 쳤다. 찌릿하며 손목이 시큰해졌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를 악물고서 다시 해머를 크게 휘둘렀다. 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시멘트가 깨졌다. 손목은 여전히 아팠으나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끙끙 거리면서도 침대 아래의 시멘트를 깼다. 그리고 그 뒤에 그 잔해들을 하나씩 주황색 쌀 포대 자루에 옮겼다. 유적을 발굴을 하는 사람처럼 마찬가지로 손길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포대 자루의 반을 채웠을 때야 맨 땅이 드러났다.
남자는 아차 했다. 삽을 준비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시멘트만 깨면 될 줄 알았기 때문에 삽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혹시나 해서 집 안을 샅샅이 뒤지며 삽을 찾았지만 없었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 마을로 나가서 삽을 빌리거나 사와야겠어.
남자는 중얼중얼 거리면서 삐뚜름하게 밀려 난 침대 위에 벌러덩 누웠다. 시멘트 가루와 땀으로 인해서 더러워진 몸을 씻지도 않고서, 드러난 땅 바로 옆에 놓아 둔 침대에 큰 대자로 누웠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남자는 잠에 빠졌다.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았다. 어찌나 곤히 잠을 자는 것인지 낮이 될 때까지 깨지 않았다.
삽을 사다가 우연찮게 이 집에 대한 소문을 몇 토막 듣게 되었다. 노인이 어느 날 어떤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더니 그 이후 여자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것과 같은.
분명히 실체는 없었다.
그래서 도리어 믿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 찾아내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삽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을 마을 공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봤다.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제 부모에게 남자가 삽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쑥덕거리면서 분명 남자가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서 삽을 샀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시기에 혼자서 이사를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쑥덕였다.
남자는 시체를 찾으려고 젖 먹던 힘까지 다 끌어냈다. 침대 밑의 흙을 파내고 구석에 자그마한 흙산을 만들어냈다. 흙산이 높이를 더해갔다. ……시체는 나오지 않았다. 제법 깊이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팠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다른 것을 발견했다. 마모된 흔적이 있는 자그마한 하얀 막대기였다. 평범한 막대기라고 보기에는 끝이 지나치게 뭉툭했다. 또한 가운데는 잘록했고 양끝이 볼록했다. 뼈였다. 정확히는 뼈로 추정되는 거였다. 확실하게 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었으나 남자는 그것이 뼈라고 단정을 지었다. 남자는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서랍 안에다 그것을 넣어두고서 다시 돌아왔다.
남자의 볼에 연분홍색 홍조가 돌았다. 입가를 씰룩거렸으며 콧구멍을 벌름벌름 거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교를 할 때에 유독 얇은 귀와 귓불은 원래보다 더 불그스름해졌다. 땅을 파는 남자의 삽질은 더 빨라졌으며 궤적은 커졌다. 땀을 뻘뻘거리면서도 남자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러나 더 이상은 없었다.
혹시 토막 내서 버린 것 아냐?
다음날에도 남자는 땅을 팠다. 이번에는 욕실이었다. 타일 몇 개를 빼놓고 해머와 드릴을 사용하여 시멘트를 깬 다음에 삽으로 흙을 파냈다. 시체는커녕 뼈도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거실 한가운데를 뒤졌다. 역시나 나오지 않았다.
지칠 만도 한데 남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젠 요령이 생겨서 쉽게 시멘트 바닥을 깰 수 있으며 삽질 역시도 수월해졌다. 나온 흙들을 어디에 처리해야하는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겼다. 남자는 집을 해체하는 일에, 아니, 시체 찾는 일에 굉장히 능숙해졌다.
침실도, 손님방도, 거실도, 화장실도……. 모조리 시체를 파내기 위해서 파헤쳤다. 능숙한 손길로 파헤치고 또 헤짚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안에서는 끝내 시체가 나오지 않았다.
뼈도 나오지 않았다. 침실 밑에서 찾아낸 뼛조각이 지금까지의 전부였다.
집 안에서는 아무래도 없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서랍 안에 있는 머리카락과 뼈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면 대체 시체는 어디에다가 감춘 것일까 하면서 곰곰이 고민을 했다. 한참을 생각해도 마땅히 숨길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남자의 눈에 정원이 보였다. 정원의 흙들은 유독 불그스름했다. 특히나 붉은 담 아래의 흙들은 더 불그스름한 색깔이 몹시도 수상했다. 잡초들이 무성히 난 붉은 담의 불그스름한 흙을 보다가 남자는 눈을 빛냈다.
저기라면 시체가 있을 거야.
남자는 집 밖으로 나왔다. 두 눈을 크게 뜨고서 정원을 살폈다.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뚫어져라 살폈다. 정원에서 가장 큰 나무의 밑에 흙이 툭 튀어 나와 있는 게 영 의심스러웠다. 흙더미의 색이 달라보였고 또한 누군가가 흙더미를 쌓아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붉은 담 아래 있는 흙이 가장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정원에서 가장 커다란 나무 밑을 파기로 했다.
집에서 시체를 찾는 것보다 정원에서 시체를 찾는 것이 보다 더 수월하다고 남자는 생각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원에서 가장 큰 나무 밑에서도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서랍에 든 머리카락과 뼛조각을 생각하면서 남자는 힘을 냈다. 집의 어딘가에 흉물스럽게 방치되었을 시체를 생각하면서 진저리를 쳤다.
찾아야 한다.
집을 위협하는 것은 서랍 안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의 주인이었으며 뼛조각의 소유자라고, 남자는 무수하게 중얼거렸다. 내 집을 위협하는 것에는 절대 내 집을 내어주지 않겠다고도 말을 했다. 그러면서 정원을 팠다.
붉은 담 아래의 잡초더미도 팠으며 배수관 근처도 팠다. 심지어 전기선이 지나가는 위험한 곳도 팠으며 남들의 이목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대문 앞의 흙도 팠다. 나오지 않았다. 시체는 물론이거니와 뼈도 나오지 않았다.
설마 창고인가?
이번에는 창고를 뒤졌다. 악취는 창고 안에서 여전히 났다.
그래. 창고가 가장 의심스러워!
우당탕하고 창고에 쌓아둔 물건들이 무너지도록, 남자는 열심히 시체를 찾고 또 찾았다. 창고 안의 악취는 남자의 땀 냄새와 섞여서, 마치 시체가 썩는 듯한 냄새를 냈다. 남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시체 찾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창고 안을 아무리 파도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또 다른 가정을 할 수가 있었다. 시체를 굳이 집 안에 묻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집이 아닌 외부에 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주 뒤늦게야 의심하게 되었다.
그제야 남자는 땅을 파는 일을 멈추었다.
지금껏 많은 시간을 괜한 일에다가 허비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탈감은 곧 커다란 분노로 변했다.
이 모든 것이 집으로 인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집값이 오른다는 주위의 부추김만 없었더라도 적금을 해약 하지 않았을 거다. 거기다가 노인이 제시한 계약금이 싸지만 않았더라면 이 집을 사지 않았다면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지 않았다면 칼을 들지 않았을 것이며…… 그것이 빌미가 되어서 이혼을 당하고 딸의 친권을 빼앗기지 않았을 거였다. 그로인해 회사에 나쁜 소문이 돌아 승진이 취소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회사를 그만 두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며, 본래의 집을 팔고 여기로 내려오지도 않았을 건데!
이게 다 이 재수 없는 집 때문이다!
남자는 길길이 날뛰면서 화를 냈다. 한시도 이런 집에 있기 싫었다. 또 어떤 불행을 가져다 줄 지를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하게 돋기도 했다. 남자는 진저리를 치면서 집을 내놓았다. 남자는 집을 도망치듯이 나가다 말고 집을 돌아보았다. 그러고서는 퉤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여기저기 헐린 집 안과 이곳저곳 파헤쳐진 정원. 그리고 집 안 거실에 놓여있는 서랍 안에 있는 머리카락과 뼛조각. 잡초가 급속도로 무성해졌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똑같은 계절을 몇 번 더 맞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도 그 집에 살지 않았다. 아무도 그 집에 머무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집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내와 딸을 살인마에게 잃어버린 탓에, 결국에는 미쳐버려서 땅을 파며 시체를 파다가 사라진, 그런 불쌍한 남자가 살던 집이라고. 혹자는 한을 품은 귀신이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을 홀려서 미치게 하는 집이라고.
여름에 마을로 엠티를 와서 이 집에서 담력 시험을 벌였던 대학생들은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이렇게 덧붙였다.
집 안 거실에 서랍에 담긴 머리카락과 뼛조각으로 보이는 것이 있다고. 분명히 누군가를 살해한 흔적일 거라고. 끔찍한 일들이 그 집 안에서 벌어졌을 거라고. 꼭 그랬을 것이 틀림이 없다고.



더 이상 아무도 다가가지 않게 되었으므로,
집은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Fin.

임연화(문예창작·4) 양
임연화(문예창작·4) 양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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