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우(법학) 교수에게 듣다
미디어 관련법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법문화
지성우(법학) 교수에게 듣다
미디어 관련법을 통해 본 우리 사회의 법문화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5.21 17:06
  • 호수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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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의 첨예한 대립은 사회 바라보는 거대 담론의 대립

단대신문은 지난 1248호에 게제한 ‘미디어산업발전 법안’ 관련 토론 현장이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부족해 아쉽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번 호에 우리 대학 지성우(법학) 교수를 만나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편집자 주>

▶ 최근 미디어 관련법 제정의 과정을 보면 ‘하나의 사안에 대해 그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법을 만드는데 시각 차이가 나는 이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각각 받아들인 언론학과 법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미국은 판례법으로 시작을 한 반면, 유럽은 이론적으로 발전한 것이 판례로 굳어진 형태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유럽은 국가가 구성되는 단계에서 활자가 발명되면서 표현의 자유가 ‘제한’에서 ‘확대’되는 방향으로 발전을 해 온 반면, 미국은 언론의 자유가 만개한 상태에서 국가가 형성됐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다른 자유권에 비해 중요한 자유권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차이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나라의 언론 관련 법문화는 어느 쪽을 따르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언론학을 하시는 분들의 대다수는 미국에서 공부하신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헌법을 비롯한 법률 체계와 근본적인 사상은 유럽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결국 유럽식의 전통과 미국식의 내용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언론 관련 법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미국의 수정 헌법 1조에 있는 언론의 자유라는 극대화된 언론의 자유에서 다른 정부 기관들과 계속적인 마찰을 일으키면서 판례가 형성되는 과정과, 언론 및 표현의 자유가 이론적으로 굳어져 판례가 형성되는 우리나라의 법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듯 법학과 언론학이 보이는 서로 다른 학문의 방향성이 우리나라 언론 자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학이 절제된 가운데서의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 한다면, 언론학은 자유를 주장한 다음 제한을 이야기 하는 시각차를 보이는 것이죠.

이렇게 혼재돼 있는 학문을 다시 한국식으로 이론화 시키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일 겁니다. 미국식도 유럽식도 아닌 한국식으로 이론화 시켜야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겠죠. 우리나라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생활의 현실은 미국식으로 짜여 있는 반면, 법률 형식은 유럽식이기 때문에 그것을 규범화 시키는 과정에서는 유럽식의 법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지금의 미디어 관련법은 언론학과 법학의 교차점, 미국식과 유럽식의 교차점, 아날로그 매체와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현상의 교차점과 같은 다수의 사회 현상들이 합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저는 우리나라의 언론 정책을 움직이는 것은 세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언론학, 경제학, 그리고 법학 이렇게 세 개의 축들이 서로를 비판하기도 하고 도와주기도 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경제학 측면에서 보면 현재 ‘언론 산업’은 상당히 어렵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신문은 말 할 것도 없고 공중파 역시 디지털 매체들의 등장으로 점점 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주장은 경제학적 관점의 논리입니다.

때문에 언론학적 관점에서 주장하는 언론의 기능, 언론의 중요성, 현대국가에서의 언론의 역할과 같은 것들보다는 경제학적 차원에서 언론을 바라보면 아날로그 매체는 ‘사양산업’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즉, 언론 역시 자유경쟁 시키자는 입장인 것이죠.

반면 언론의 보호막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이 보호막을 디지털 시대에 더욱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죠. 각각 산업성과 공익성으로 대표되는 입장일 것입니다. 그런 문화가 우리나라의 ‘어느 한 쟁점’에서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지점’에서 부딪히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나타나는 파열음이 현재의 문화적 충격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것들이 지속적으로 사회 문제로 드러날 것이고 그리고 이 문제들이 계속해서 해결되는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다양한 원인들 중 가장 중요한 요인이 법과 매스 미디어 환경이라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을 것으로 압니다. 때문에 최근까지 미디어 관련 법 제정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요, 각 당의 이익에 의해 법 제정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도 있습니다. 당리당략을 떠나, 올바른 (법)문화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이번 법 제정의 ‘기준’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여론의 다양성 때문일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들이 사상의 자유로운 시장에서 경쟁하고, 국민들이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죠.이러한 고전적인 언론의 관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사라져서는 안 되는 역할인 것이죠. 그런데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언론 역시 산업이라는 성격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즉, 언론 기업이 생존하고 그 언론 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해야 언론의 자유도 지켜질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현재 한국의 언론 시장의 상황을 보면 신문이나 방송 기업이 지속적으로 어려워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특별히 정권의 음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정당의 의도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매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변화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직접 돈 주고 종이 신문을 사서 읽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가령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일간지 하나씩 들고 오라고 하면 무가지를 들고 오는 학생들이 많다는 거죠. 어느 누구도 기존의 신문방송 시스템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 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시장의 니즈(needs)나 국민들의 정서는 기존 아날로그 매체보다는 디지털 쪽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물론 지나치게 산업 논리적으로 흐르면 사회 전체의 이념적 바탕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지킬 수 있는 법적 규범적 토대가 어디까지인가가 고민의 대상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극단적인 공익론자들이나 극단적인 산업론자들은 정책을 입안하는데 있어서 배제돼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국민들이 해야 하는 것이겠죠. 여기에 더 어려운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다는 거죠. 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서 논리적으로는 풀어낼 수 없는, 이 대립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그러한 축들이 형성 되어 있어요. 전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현재 지역적 정치구도보다는, 이념적 정치구도가 원래의 민주주의에 맞습니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 법이라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나타나는 미디어 법의 첨예한 대립 관계는, 단순히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를 바라보는 거대 담론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회가 어느 쪽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아마 여기서 결정 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바뀌는데 법률들이 몇 백개가 바뀌어도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법률 한 두 개가 바뀌어도 세상이 변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쟁점 법률이라고 하고 그 중 하나가 미디어 법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의 일련의 정치, 사회, 경제적인 담론이 바로 이 미디어 법을 통해서 폭발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것이고, 때문에 여야가 양보할 수 없는 첨예한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죠.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까요? 정책을 입안하는 입장에서는 다각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공익적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들로부터 다소 욕을 먹더라도 소유구조 제한을 상당히 완화시킬 필요가 있겠죠.

반면 산업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입장으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언론의 기본적인 가치가 지켜질 수 있는 시장 질서를 유지하게 만들어 줘야하는 것이 정책 입안자들이 가져야 할 중용입니다. 자, 이제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언론법을 공부하겠다는 대학원생들에게 언론정보학이나 언론정보법, 언론학과 같은 책을 보게 하고, 경제학을 공부하게 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런 다음 법학을 공부하도록 하고요. 디지털화 되는 세상에서의 언론의 역할을 알기 위한 소양이 이렇게 많이 얽혀 있는 것입니다. 즉, 학제간의 차이가 전부 어우러져야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이고, 이런 것들을 아는 분들의 한 마디는 굉장히 무거운 것이 되겠죠. 한국 사회 언론에 대해 이해를 하면서 경제와 법을 아시는 분들이 현재 상황에서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대다수의 학자들은 언론학이면 언론, 경제학이면 경제만 하시던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학자들끼리 모여 한국말로 대화를 해도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각자의 학문 분야에서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들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언론 정책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충돌하는 접점이 많고, 때문에 다양한 학문에 대한 통섭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이런 학문적 지식들을 아우르고 계신 분들께서 접점, 즉 대립점의 중간에 서서 정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 마지막 질문 드리겠습니다. ‘법’이라고 하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부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학문으로서의 법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실용 학문과 이론 학문을 가르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모든 학문이 실용이며 이론인 것입니다. 제가 항상 수업 첫 시간에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요, 법은 사회로부터 태어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회의 니즈에 따라 법이 발전하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법을 가장 쉽게 아는 방법은 생활로부터 체득하는 것입니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 사이에 규율을 정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잖아요. 이렇게 인위적인 규칙을 만들 때 그 규칙들이 생겨나게 된 사회 현상을 이해하면 법이 자기 생활로 다가오는 것이죠. 헌법 중에 가령 신체의 자유나 언론의 자유 같은 것들 말이죠, 사실 제가 강의 들을 때는 참 쉽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번번이 학교 올 때마다 전경들한테 맞고 가방 검사 당하고 하는 상황에서는 신체의 자유라는 개념이 제 생활이거든요.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 이런 것들이 내가 언젠가 끌려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생활의 일부로 필요한 개념이잖아요. 민주화가 되면서 오히려 표현의 자유와 같은 것들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법이 생활 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법대 학생들조차도 법을 외워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겁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죠. 요즘 대학생들의 공부 여건을 보면 넓지도, 그렇다고 깊지도 않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소위 스펙이라고 하는 것들, 수많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1학년 때부터 토익 책은 끼고 다녀도 칸트나 헤겔의 책을 들고 다니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또한 취업이라는 것에 밀리다보니 전공을 깊게 공부하지도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학문으로서의 법을 친근하게 느끼는 방법은 공동체에 대한 고민, 사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 번 촛불집회 때처럼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과 자기가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사회 참여, 즉 분위기에 휩쓸린 사회 관심은 여러 부작용들을 낳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생활 속의 법을 이해하려 한다면 법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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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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