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목포
⑩ 목포
  • 김현지 기자
  • 승인 2009.05.21 19:47
  • 호수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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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은 목포

대학교 3학년.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 나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렸다. 나는 한적한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5월 5일 어린이날. 비록 어린이가 아니지만 그동안 어른노릇을 하려 애쓴 나에게 어린이날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여행이라는 선물을.

버스를 타고 4시간 동안을 달려 저녁 즈음에 목포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목포를 한눈에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유달산에 올랐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조금 걷다 보니 벌써 정상이 보였다. 작은 도시인 목포를 닮아 산도 작은가 보다.

뜨거운 낮의 열기를 보상해주듯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밑을 내려다보니 목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노란 가로등빛이 모여 마치 집집마다 촛불을 들고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았다. 왠지 환영받는 기분이 들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하루하루 바쁘게 시간을 보내면서, 여행에서만큼은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결심하고 다음날 유달산에서 가까운 대반동 바닷가를 향했다. 바닷가에 들어서니 내가 생각했던 바닷가의 모습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넓은 모래사장과 파라솔 대신 여러 척의 배들이 바닷가에 줄줄이 매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니 목포가 항구도시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조용한 대반동 바닷가 항구의 모습.
목포의 바닷가는 투박한 느낌이다. 부산의 바닷가가 잘 지어진 기와집 같다면 목포의 바닷가는 투박한 통나무집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더 정감 있게 느껴졌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바닷가 주변을 걷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일꾼들뿐이었다.

타지에서 온 사람은 나와 내 친구 둘뿐. 갑자기 바다의 짠 내가 확 밀려왔다. 일꾼들이 흘리는 땀 냄새가 배인 냄새 같다. 나는 늘 계획되어진 삶을 살아왔다. 어떤 곳에 여행을 갈 때도 일정을 정해서 행동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그 틀을 깨고 싶었다.

‘그래. 여행이니까. 하루쯤은 괜찮아.’ 나는 목포문화원 근처에 택시를 세우고 발길 가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목포문화원 왼쪽으로 걷다보니 골목골목 사이로 집들이 보였다.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매일 도시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흰색 아파트들을 보다가 하늘색 노란색 다양한 컬러로 페인트 칠해져있는 집들을 보니 삭막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볕을 쬐면서 한참을 걸었다.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티셔츠는 축축하게 젖었다. 예전 같았으면 짜증이 났을 상황인데 짜증이 나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포에서 특별히 무엇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무는 동안 행복했던 이유는 아마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도시 목포에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었다.

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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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nhasu@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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