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신문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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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섭(한국외대 교양학부) 강사
  • 승인 2009.06.02 17:20
  • 호수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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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마케팅의 전략으로서 철학, 인문학

보편적·절대적 가치와 감수성을 구축하려는 인문학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닌 일종의 ‘지역학’으로 다양하게 활용해야


우리가 사는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문(文), 사(史), 철(哲)이라는 인문학의 입지가 매우 좁아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어느 시대에나 실용적이고 현실사태에 직접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학문과 기술이 많은 학도들을 끌어들였던 것은 분명하나, 그래도 인문학은 상당히 무게감 있는 위상을 가졌었다. 과거 인문학의 무게감은 그것이 가진 보편성과 절대성에 있었다. 물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또한 매우 추상적인 것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핵심적 분과 중 하나인 철학은 우리가 가진 앎이라는 작용을 해명하면서 가장 보편적인 논리로 규정해놓기도 하고, ‘자유’, ‘평등’, ‘최고선’ 등등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들을 내세워 사회적, 윤리적 비전을 제시한다던지 비판을 가할 수 있는 준칙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문학의 또 다른 핵심적 분과인 문학은 ‘셰익스피어’, ‘괴테’, ‘도스토예프스키’ 등 인류보편의 감수성을 다루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심도 있게 파헤쳐 그 감수성을 밝혀놓는다. 이렇게 밝혀진 감수성은 분명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해당하는 감수성이리라.

 
이렇듯 그동안 인문학이라 하면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이란 ‘자유’, ‘평등’ 등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며 사회개혁을 부르짖는다던지, ‘햄릿’, ‘파우스트’, ‘죄와 벌’ 등 고전들을 읽고 그 안에 들어있는 획일화된 감수성을 체득해야하는 일이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랄까 획일화, 정형화된 감수성이랄까 하는 것이 고취되고 응축되면서 ‘이념’이 발생하게 되는데, 따라서 인문학이 그 위상을 떨쳤던 과거는 이념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념의 시대가 가고 실용의 시대가 도래한 오늘, 실용의 강력한 효과 앞에서 보편적, 절대적 가치를 부르짖거나 획일화, 정형화된 감수성을 강요하는 것은 단순히 선전구호로 퇴락하는 오늘, 인문학의 입지가 대폭 축소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인문학을 어떻게 여겨야할까? 보편적, 절대적 가치와 감수성을 구축하려하는 인문학은 이제 내다버려야 할 환상인가? 우리는 여기서 인문학적 활동을 잠시 멈추고 도대체 인문학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문학이라 함은 자연과학이나 공학과는 달리 그 인문학이 속해있는 문화지역에서 발생한 문화적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부각된다.


인문학은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문화지역을 결코 벗어나서 완전한 보편이나 절대에 이를 수 없으며, 다시 말하자면 인문학은 자신이 태어난 구체적 문화지역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문학은 보편학이 아니라 철저히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역학’인 것이다. 칸트, 헤겔, 니체의 철학은 독일지역학이고,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영국지역학이며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은 러시아지역학이다.


이제 일종의 ‘지역학’으로 파악된 인문학을 실용적으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물론 많은 종류의 활용가능성이 있겠으나, 우리는 여기서 인문학을 국제마케팅의 전략에 활용하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인문학은 자신이 속한 지역문화의 정신을 생생하면서도 섬세하게 담고 있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인문학이해는 그 지역문화의 분위기나 성향을 파악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고 화려하지 않으며 매우 체계적인 독일철학, 독일문학으로부터 독일인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상품의 디자인을 단색으로 한다던지, 제품의 화려한 기능을 대폭 축소하여 일목요연하게 한다던지 등등 전략을 삼을 수 있겠고, 화려함과 과장을 보여주는 남미문학에 착안하여 제품을 그에 따라 설계하고 디자인 할 수도 있겠다.


인문학연구로 국제마케팅에 일조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은 인문학적 아이콘을 광고와 상품명에 직접 활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어떠한 상품을 어떠한 지역에다 마케팅하려 할 때, 그 상품이 그 지역의 어떤 유명한 인문학적 맥락, 다시 말해 어느 유명한 시나 소설의 맥락과 잘 맞아떨어진다면 그 맥락에서의 인물명, 장소명을 그대로 상품명으로 차용한다던지 혹은 상품의 광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문학’을 인류보편의 그 무엇으로 여기지 않고 무수한 개별적인 지역문화의 산물이라 여기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인문학은 더 실용적이면서도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할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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