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천병희 명예교수
[피플] 천병희 명예교수
  • 정리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6.02 17:31
  • 호수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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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30년만에 완역한 천병희 명예교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야 이룰 수 있어

의미 있게 살아보려 노력한 사람은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 전체를 국내 최초 원전 번역 한 우리 대학 천병희 명예교수가 생각하는 文·史·哲은 어떤 것일까? 평생 그리스 원전을 접하며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을 함께 해 온 천 명예교수를 통해 인문학의 가치를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 우리 대학 천병희 명예교수는 30여년만에 그리스 비극을 완역해 냈다. <사진제공: 도서출판 숲>

[원전]
원전을 읽는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교수님께서 원전을 번역하기 위해 왜 그렇게 열정을 기울이시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 라틴 고전들도 원전으로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작가 또는 저자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정확히 알아야 우리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입학하자마자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계속해서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라틴 고전을 편역하는 수준을 넘어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잘된 우리말 번역이 잘된 영역이나 독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원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어를 배운 지가 벌써 50년이 훨씬 넘었고 번역할 때면 영역 몇 가지와 독역 몇 가지를 참고하니까 계속해서 독일어와 함께하는데도,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잘된 독역이라도 읽어 보면 알쏭달쏭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빗대어 말하자면, 외국어 번역을 읽는 것이 달밤에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 우리말 번역을 읽는 것은 대낮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일 경우 말입니다.


내가 그리스 라틴 고전 번역에 이렇게 집착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번역도 창작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중국의 구마라습이나 현장법사의 한역(漢譯) 불경들은 동양의 대승불교 사상의 형성과 완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한국의 불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리스 라틴 고전도 우리의 사고 지평을 넓혀주고 심화해줄 훌륭한 영양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 문명은 서양 역사 전체를 통틀어 후대에 가장 빛나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세기에 공직자들을 투표로 선출하고, 민회에서 중대 사안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꽃 피었고, 철학, 역사, 서사시, 드라마, 조각, 건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로마는 물론이고 서유럽이 빨리 야만을 탈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리스 문화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란 다름 아닌 그리스 문화의 부활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 말을 문화 전반에 적용하여 유럽 문화는 그리스 문화?주석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그 밖에 내가 그리스 문화에 끌린 것은 그리스인들이 지식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알아도 안다고 우쭐대지 않고 겸손하며, 누구와도 대등한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큰 업적을 남겼어도 지나치게 잘난체하는 사람은 독재자가 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도편추방’ 제도를 통하여 재산은 몰수하지 않고 10년 동안 국외로 추방했다는 것입니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을 승리로 이끈 테미스토클레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못지않은 장군 겸 정치가로 풍전등화의 지경에 놓였던 조국 아테나이를 구했으며, 어쩌면 서양이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막은 만고영웅입니다.

하지만 아테나이인들은 한 영웅보다는 조국의 민주주의를 더 사랑하여 그에게 가혹한 처분을 내렸던 것입니다. 무엇이든 통치자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가기보다는 잘잘못을 따져보고 행동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그런 아테나이인들이 나는 부럽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고전의 현대적 의미]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책의 머리말에서 “서양 문화의 좋은 부분들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 문화유산에서 원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남긴 기록과 유산부터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며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밝히셨는데요, 학생들의 실생활과 연결시켜 고전 읽기의 당위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 살기 힘든 세상에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대답하기가 참 쉽지 않은, 어쩌면 불가능한 매우 오래된 질문입니다. 젊은이들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지금 같은 물질만능의 시대에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가 쉽지 않겠지요.

여기서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우회적인 답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몸으로 하는 일인 사람은 타고난 노예라고 했습니다. 스포츠 선수들과 탈렌트들이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된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우리 인간은 이성에 따라 정신적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몸을 위해 충동에 따라 몸으로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과 인간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따라서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다른 동물들의 행복처럼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여가 시간에 스포츠나 오락물만 관람하고 육체적 스트레스만 풀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정화해주는 음악도 듣고 연극도 관람하고 미술관을 찾아 명화도 보고 친구들과 어울려 유익하고 재미있는 대화도 하곤 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틈틈이 고전도 읽고 클래식 음악도 듣고 친구들과 독서회나 음악 감상회 같은 동아리 모임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삶이 인간에게는 더 의미 있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文·史·哲의 가치]
그리스 원전을 접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을 동시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평생 ‘문사철’과 함께 하신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정신의 가치를 믿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사회도 더 인간적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목적이고 돈은 그 목적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도, 마치 돈이 전부인 양 너도나도 돈에만 매달리고 돈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회는 결국 소수의 부자들 말고는 모두에게 불행과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습니다. 부(富)는 역시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오직 자신과 가족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돈을 벌자마자, 여태까지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양 명예까지 요구하는 풍조가 만연한다면, 그런 위선적 사회는 더불어 살기가 힘들어지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유발될 것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절망할 테니 말입니다.

이런 물질만능의 사회를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견딜 만한 사회로 만드는 데는 문사철(文史哲)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사회가 나아갈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문사철이 할 일이고, 그 물질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은 응용 학문이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문사철이 똑바로 서지 못하고 푸대접받는 나라는 일시적으로는 번영을 누릴는지 몰라도 결국에는 몰락과 망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로마 제국이 몰락한 것은 문사철의 전통이 약해졌기 때문이며, 오스만 제국과 몽골 제국이 몰락한 뒤 이렇다 할 문화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 것도 결국 문사철이 똑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지 않습니까!  


당장 취업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잔소리쯤으로 들리겠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일상에서 낭비되는 자투리 시간이 없는지 살펴보고 그 자투리 시간이라도 선용하는 식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늘려나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취업한 뒤, 출세한 뒤, 먹고 살 만큼 돈을 번 뒤 그러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좋지 않은 습관으로 머리가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져 달라질 수 없거나 달라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구성원들의 그런 적은 노력으로도 사회는 인간의 탈을 쓴 야만과 탐욕이 날뛰는 살벌한 전쟁터가 되지 않고 더불어 살 만한 인간적 삶터가 될 것이며, 그것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미래를 살게 될 우리 자손들에게도 더 바람직하겠지요. 

 

[조언]
명예교수로 계시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학술 연구를 어느 정도 완성하고 대우를 받아야 하는 위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교수님께서 최근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모든 작품을 원전 번역 하시는 등, 현역 교수님들보다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학업에 매진할 학생들에게, 그리고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을 많은 교수님들께 ‘공부’에 대한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나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나이 많고 오래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단대생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 달라고 한다면, 시간낭비하지 말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열심히 씨를 뿌리라고 권하고 싶어요.

개미와 매미의 우화가 암시해주듯, 씨 뿌린 자는 가을이 되면 거둘 것이 있어도 씨 뿌리지 않은 자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내가 말하는 씨란 주로 혼자 책 읽고 사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모임이나 만남은 되도록 줄여야 합니다.

혼자 있으면 두려워질 때도 있겠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만이 생각이 커지고, 몰려다니면 자기 생활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어느새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 순간 가장 후회스런 것 중 하나는 돈을 벌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한 번뿐인 인생을 의미 있는 일에 쓰지 않고 허송세월했다는 느낌이 아닐까요?

그러나 의미 있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사람은 노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할 것입니다. 여기서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가 무엇을 했는가보다 무엇을 하려 했는지 보라고 한 독일 시인 횔덜린의 말이 생각나는군요.

정리 : 박준범 기자
정리 : 박준범 기자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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