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에딘버러에서 꿈길을 걷다
⑩ 에딘버러에서 꿈길을 걷다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7.07 14:22
  • 호수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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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인포위큰 때 학교를 방문했던 제이미에게서 메일이 왔다. 특별한 크리스마스 휴가 계획이 없다면 자기가 머물고 있는 에딘버러에 오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의 반가운 편지였다. 약 열흘간의 할리데이를 어떻게 보낼까 고심하던 참이었는데 덕분에 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에딘버러’, 스코틀랜드를 여행할 때 누구나 관문처럼 거쳐 가는 곳, 내게 에딘버러는 문화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던 터였다. 문화부 기자로 일할 때 늘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대한 기사를 쓰곤 했는데 손끝으로 이미 익숙해진 도시여서인지 큰 기대감은 없었다.

에딘버러에 도착한 첫 날, 제이미와 크리스 마스 마켓을 거닐며.
다만 제이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열흘간 보장된 휴식이 나를 웃게 했다. 룸메이트인 한국친구와 함께 떠난 휴가길, 기차로 약 4시간 걸려 에딘버러에 도착했다. 제이미는 당연하다는 듯 마중 나왔고 우린 재회의 포옹을 나눴다. 기차역을 나서는 순간 우린 탄성을 내질렀다.

화려하게 네온으로 장식된 상점들과 기차역 건너편에 위치한 작은 놀이공원, 뒤쪽으로 보이는 고성들, 나는 꿈속에 있다는 착각마저 느꼈다. 제이미는 체코에서 온 친구 패트릭과 시티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플랫에 살고 있었다. 장난스런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 패트릭은 듣던 대로 수다쟁이였다. 만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그가 그간 몇 명의 여자친구를 사귀었는지 꿰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날 저녁 우리 넷은 서둘러 외출했다. 외출을 서두르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제이미는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전통을 깨지 않기 위해 이틀 후인 크리스마스 전 날 아일랜드로 돌아가야 했다. 우린 각기 한 손에 피쉬앤칩스를 들고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갖가지 공예품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저녁, 집근처 작은 클럽에 가게 됐다. 맥주를 주문하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CICD 학교 규정상 프로그램 안에 있을 땐, 술을 금지하게 되어 있다. 나도 모르게 이 규정에 길들여져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술을 입에 대는 게 어색해진 것이었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나는 공동체생활에서 잠시 탈피해 자유를 누렸다.

크리스마스, 친구 패트릭과 로얄마일에서.
클럽에서 처음 만난 스코틀랜드 커플과 손을 맞잡고 신나게 춤을 추며. 제이미가 떠나고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패트릭의 제안으로 우린 집에서 멀지 않은 에딘버러캐슬과 로얄마일로 작은 소풍을 떠났다. 오래된 서점과 핫초코가 맛있다는 카페, 기념품 가게. 패트릭은 가는 곳마다 개그맨 뺨치는 우스운 표정으로 나를 쉴 새 없이 웃겼다. 그는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년쯤 영어강사 자격으로 한국이나 일본에 갈 계획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로얄마일에서 목도리를 사서 내게 선물했고, 한국에서 내년에 꼭 다시 만나자며 환하게 웃었다. 에딘버러는 새해축제로도 유명한 도신데, 매년 그 해의 마지막 날 길거리 축제가 열린다. 고맙게도 제이미가 떠나기 전 티켓 2장을 선사했다.

덕분에 거창하게 새해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 나이 성별 국적을 무시하고 모인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나는 지나치는 사람 모두와 새해인사를 나눴고 곧 친구가 됐다. 축제 열기는 한일전 월드컵 때와 비교할 만 했다. 소띠인 내가 낯선 곳 에딘버러에서 기축년 새해를 맞을 줄 누가 예상했을까.

화려한 불꽃놀이와 낯선 인파에 둘러싸여 새해를 맞으면서도 나는 놀랍게도 그 틈에서 아프리카를 봤다. 5월초 아프리카로 떠나 DI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끝내는 날짜는 내년 1월 1일, 에딘버러에서의 긴 할리데이가 끝나가고 있었지만, 새해가 왔고 다시금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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