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연구자(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윤명숙 씨를 만나다
역사연구자(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 윤명숙 씨를 만나다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7.09 13:09
  • 호수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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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별세계의 학문이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살아 숨 쉬는 학문

“그래서 어쩌라고?” 평소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이다. 과거사를 배워서 뭐 어쩌라는 것인지, 지나간 일들을 다시 들춰내서 어쩌자는 것인지……. ‘맥락(context)’ 속에서의 이해가 아닌 ‘내용(text)’ 암기에 익숙한 우리의 역사 학습 방법으로 생긴 우문들. 사학(史學)이 사학(死學)이 되지 않기 위한, ‘오늘에 살아 있는 역사’를 위한 방법들을 윤명숙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을 통해 들었다. <편집자 주>

[시간] 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사건들을 온전히 복원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일 겁니다. 그런데 때때로 ‘미래지향적 사고’라는 말들로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며 미래를 위해 과거 시간의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좀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과거 시간의 복원(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역사라는 것이 별세계와 같이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석기나 청동기, 철기시대에 대한 암기를 하며 공부를 하다 보니 현재와는 무관한 학문, 별세계의 학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거죠. 과거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를 현재에 살아있는 역사로 끌어서 되살려 볼까요? 많은 경우 위안부 할머니들을 그저 ‘불쌍한 할머니들’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문제나 인식의 문제로 접근하기 보다는 지극히 감정적인 시선으로 보는 겁니다. 하지만 80년대에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인신매매단 사건’을 과거 별세계의 사건이라고 치부하는 위안부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잘못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각성을 하게 됩니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지만 우리가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 오던 문제라 인지하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각성이죠. 법은 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다시 문화는 사람들의 생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 면에서 1910년대부터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이식된 법과 문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공창제도가 이식이 되었어요.

국부적으로는 통감부 시절부터 일본의 공창제도가 이식되기 시작했지만, 조선에 전국적으로 그리고 통일된 공창제도가 이식되었던 것은 1916년이죠. 이와 함께 소개업도 합법화되었죠. 이를테면 유곽이나 요리점 등에 여자를 공창이나 예기, 기생, 작부 등으로 ‘소개’하는 - 실질적으로는 인신매매를 하는 - 소개업이 시스템화 되었죠.

이 메커니즘이 위안부 징집에 이용이 된 것이죠. 일본군이 허가하는 징집업자가 맨 꼭대기의 정점에 있고, 그 아래로 하청업자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퍼져나가는 방식으로 조직망이 형성되어서 취업사기나 인신매매 수법으로 조선여자들을 위안부로 징집을 했고 이러한 시스템 혹은 메커니즘이 아직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었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인신매매단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저 시험을 보기 위한 암기의 대상으로 역사를 접하다 보니 문제의식이나 각성을 하지 못할 뿐이죠. 80년대의 인신매매단만 있을까요? 90년대에 군산에서 있었던 ‘노예매춘’도 비슷한 범주에 속합니다.

매매춘 하는 업소가 불탔는데 문을 밖에서 걸어 놓고 감금을 시켜 놓아서 그 안에 있던 대부분의 여자들이 타죽은 일이 있었어요. 좀 더 크게 국가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해 보죠.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 왜 경찰이 제대로 투입되지 못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냐고 했을 때 경찰의 대답은 “시위를 진압하느라”였죠.

화성의 경찰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곳에 투입돼 치안 유지를 할 수 없었다는 거죠. 국가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가치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 왜 국가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진압하면서 연쇄 살인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는지 역사라는 관점에서 연결시켜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똑같은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봐야 하는 것이죠.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위안부 문제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과 연결할 수 있는 거시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오인된 자유의 편안함’을 각성하게 해 주는 것이 역사의 역할이죠.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그래서 사회 전반의 의식이 변화하지 않는 한 지속적으로 반복될 것입니다. ‘과거의 일들을 왜 굳이 복원하려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보이는 국가폭력이라고 하는 사회의 모순된 구조를 우리같이 역사를 하는 사람들이 조사하고 알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똑같은 구조적 문제의 본질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 흔적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사회가 함께 앎으로써 오늘의 문제들에 응용해 해결해 보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의 사실들을 오늘 우리가 직면해 있는 문제들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어떤 지향점을 갖느냐는 논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미래를 향해 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오늘에 살아있는 역사를 만들고 싶은 거죠.

[기억] 하지만 누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지나간 일들을 과거라는 시간을 이용해 덮어버리고 싶은 경우가 있잖아요. 선생님이 하시는 일들은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보통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친일의 역사’를 들춰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진실과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으시지는 않는지요.

- 이 질문 역시 현재 우리가 겪는 고민과 연결을 해보죠. 우리는 싫던 좋던 한 조직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직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 무척 어렵거든요. 다들 “더럽고 치사해도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위 맞춰준다”는 말들을 하잖아요.

요즘 들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러워도 참는다”는 말에 담겨 있는 삶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요. 물론 국가적 차원의 소신인가 가족적 차원의 소신인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고민의 출발 지점은 같다고 볼 수 있잖아요. 간단히 식민지의 시대 상황을 볼까요?

1920년대 말부터 시작된 세계 공황, 30년대 있었던 만주사변을 거쳐 한반도 전체는 전시체제로 들어가게 되죠. 사실 3·1운동 이후 군자금 모금운동과 같은 것들을 제외한, 어느 정도의 사회 활동들은 합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신간회와 근우회가 해체된 이후부터는 이런 활동이 지하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동시에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협박과 회유가 시작됩니다. 독립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다들 처자식이 있잖아요? 이 당시 여자들이 특별한 돈벌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독립 운동과 가정생활을 동시에 해야 하는 갈등, 지금으로 따지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러워도 참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들의 갈등이 있었던 거죠.

독립이 될 거라는 희망도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의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독립 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지금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어려웠겠죠. 그래서 소위 ‘전향’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 이 30년대의 시점이죠. 이제 우리는 ‘전향의 종류’, 즉 친일의 정도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친일이냐 반일이냐, 좌냐 우냐 라는 이분법으로 역사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하지만 좌와 우 사이에 그리고 친일과 반일이라는 양끝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 수백 수천의 - 스팩트럼이 있어요. 이러한 많은 스팩트럼을 섬세하게 바라보아야 할 때라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친일 안 한 사람 없게?’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 입니다. 실제로 이런 화두를 꺼내는 사람들은 과거사를 과거의 시간이라는 이유로 덮어버리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 것들을 주의 하면서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역사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겠죠.

[속도] 속도가 경쟁력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과 사회에서 역사나 철학, 그리고 문학과 같은 학문들이 점점 지위를 잃고 있는데요, 이런 시기에 사학이 갖는 의의란 어떤 것일까요?

- 이런 거 같아요. 경제나 경영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부(富)를 잘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겠죠. 반면에 역사나 문학, 그리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인간답게 사는 것이 뭔가라는 고민, 좀 더 넓게는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라는 고민을 사람들에게 던지죠.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라는 고민을 할 때 경제적인 것과 사람의 욕심만을 축으로 놓고 생각하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에 대한 고민의 폭이 좁아지죠.

여기서 사학의 가치가 발휘됩니다. 스웨덴의 예를 들어볼게요. 이 나라는 10년 전 쯤부터 3교대제 근무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방식의 근무를 하게 되면 물론 사람들은 각자의 월급은 줄어들겠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나눠준다는 취지에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던 거예요.

상대적으로 늘어난 개인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도 한 몫 했을 겁니다. 수입이 줄어드는 반면 봉사활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는 등 생활 자체가 풍부해질 거라는 국민 각자의 인식이 뒷받침 됐을 겁니다. 이런 제도를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수용한 것은 그만큼 사회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겁니다.

즉, 인문학적 고민이 사회 전반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거죠. 반면에 ‘천민자본주의’라는 말까지 나오는 한국 사회의 현재 모습은 인문학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효율적으로 목표에 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그렇게 효율적으로 얻은 것들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런 고민과 생각의 기회를 주는 것이 인문학, 그 중에서도 사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부]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사학이라는 것이 어쩌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교양으로서 역사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의견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 역사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대한 연구를 하다 보면 그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보기도 하고 또 어떨 땐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위대한 모습을 보기도 하거든요. 그러면서 내 삶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어떤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사건에 관여되고 그 속에서 살았던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지금의 나를 생각할 기회를 얻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접근을 하다 보면 역사를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이 과거의 일들에 대한 공부를 별세계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늘에 살아 있는 역사’로 느낄 수 있는 것이겠죠.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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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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