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는 것은 아름답다
변하는 것은 아름답다
  • 단대신문 편집부
  • 승인 2009.07.09 13:43
  • 호수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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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만물이 생동하고 서서히 존재적 위상을 일깨우며, 용트림을 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맞는 봄은 자신이 살아있는 생의 연수와 동일하다. 개인은 자신이 인식하는 범위에 따라 빈번하게 또는 드물게 새 봄을 맞는다.

한 해가 소진하는 시간적 단위를 빠르게 느끼거나 길게 느끼는 것은 개인의 심리적 태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순환에 적응하며 진화를 해 왔기 때문에 자연의 상황에 따라 스스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새 봄이면 한 결 같이 새로움을 느끼고 생의 에너지에 충만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이고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이기에 그 이치를 거부할 수 없다. 다시 봄이다. 우리 인생의 연수와 동일한 수만큼의 봄이라면 지금 우리가 맞는 봄의 횟수는 어디에 있는지 자문해 보자. 거부할 수 없는 봄의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

겨울잠을 자던 곰이 깨어나고 거대한 신갈나무가 뿌리 끝에서 잎맥에 이르기까지 수관을 통해 땅의 정령을 끌어올리는 신성한 시간이다. 마치 마술에 걸린 듯 온 대지가 서서히 탈바꿈을 한다. 모든 것이 변화하는 우주의 중심에 우리가 서 있다. 그 변화의 중심에서 우리는 어떤 몸으로 변화 하고 있는가.

무릇 삼라만상이 변할진대 어떤 색깔과 허울로 자신을 진화시킬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늦으면 가을이 오기 전에 수습을 못한다. 너무 이르면 충만한 몸을 가꿀 수가 없다. 더욱이 변화가 없으면 죽은 것에 불과하다. 이 세상에서 오직 죽은 것들만이 변화가 없다.

스스로 존재를 지닌 것들은 변화하면서 자신의 위상을 점유한다. 우리의 삶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목표다. 의식주조차도 단순한 생명의 보전이라는 생물학적 조건에서 벗어나면 존재의 위상이라는 목표에 닿아 있다.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에 위상을 설정하는 것이 인간의 삶의 최종 목표인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에 게으르면 자신의 존재적 위상을 지닐 수 없다. 새봄의 푸른 잎에서 생생한 생의 에너지가 전해오는 이유는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 속에는 존재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단국인은 변화를 통해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야 하며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변화를 가로질러 어떤 미래를 꿈꾸는 지 그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 할 시간이다. 변하는 것은 모두 아름답고, 젊음은 그 변화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단대신문 편집부
단대신문 편집부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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