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사물의 속성과 이름
[우문현답] 사물의 속성과 이름
  • 이종우(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강사
  • 승인 2009.08.02 19:58
  • 호수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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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전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

[우문] 김춘수 시인의 작품 <꽃>중에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유명한 싯구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어떤 사물을 가치롭게 인식하면 그때 그 사물이 가치를 지닌다는 뜻입니다. 또 갑자기 어떤 직급에 올랐을 때 그 직급에 오른 순간부터 행동이 달라진다던가, 소박한 예로 어떤 이성이 좋아한다고 고백해오면 그 친구가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사물의 속성은 변함이 없는데 ‘이름’을 다르게 부여함으로 인해 속성이 달라지는 것이죠. 이러한 의미에서의 ‘이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답] 이름이란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의사소통을 위하여 붙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은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 대한 호칭입니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 그리고 기호 등도 사물 내지 사건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에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간’ 역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과 구별하기 위하여 생긴 것입니다.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다른 사물과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그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물과 이름의 완전한 일치는 어렵습니다. 상형문자일지라도 그 사물의 형태는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그림이 아닌 사진일지라도 그것을 찍는 방향과 그 기술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사물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사물을 직접 본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는 사람 모두 그 인식이 일치하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사물을 상징하는 상형문자는 그 일치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호 내지 문자와 말 등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물론 같은 사물과 사건을 상징하는 기호 그리고 문자와 말은 각각 사회마다 또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같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도 다르게 됩니다. 사람마다 인식이 다른 이유는 눈 귀 코 입 피부 등의 감각기관 등 육체의 형태가 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써 칠판을 보는 것은 눈이지만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기 때문에 칠판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칠판의 미세한 색깔에 대한 인식이 일치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감각기관으로 대상을 인식하지만 그것을 주관하는 것은 내면의 의식입니다. 그 예로써 칠판을 눈으로 보면서도 의식이 다른 데 있다면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각기관이 다르지만 그 의식이 같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인식이 같기도 하는데 그것은 선입관으로 인한 것입니다. 사람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므로 경험한 인식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선입관이 생깁니다. 그 예로써 칠판을 보고 칠판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들이 이전에 그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인식한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만약 처음 칠판을 보는 사람은 그것을 칠판이라고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예로써 고위직은 이성적이고 하위직은 감성적이라는 견해,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는 견해도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선입관 때문에 당사자는 물론 그 사람을 대하는 상대방도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사자 뿐만 아니라 상대방도 행동이 이전과 비슷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실질은 변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붙이는 이름 때문에 달라지는 것은 결국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분히 주관적 인식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육체에 입각하여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주관성이 강합니다. 객관적 인식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구속과 경험 때문에 완전히 이룬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주로 그러한 경험에 의존하여 생기는 것이 바로 이름이며 그것이 사물의 실체를 나타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주로 약속 또는 무언(無言)의 인정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이름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름 이전에 그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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