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윤음
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윤음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08.02 21:39
  • 호수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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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을 아끼는 정조대왕의 마음, 윤음 반포와 새 농서 편찬으로 이어져


내년 기미년(1799)은 선왕(영조)께서 적전(籍田)에서 직접 밭을 가셨던 해이다. 50년 동안 임금의 자리에 계시면서 팔도를 덕으로 기르셨는데,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하고 농사를 중하게 여기는 것을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았고 오래도록 전해질 공적의 바탕으로 삼으셨다. 크고 높은 공적으로 무궁한 터전을 닦으셨는데, 태세성(泰歲星)이 한 바퀴를 돌아 그 기미년에 임하게 되었다.(중략)



농사의 근본은 부지런하고 수고로운데 달려 있는데, 그 요체를 말한다면 수리(水利) 사업을 일으키고, 토질에 적절한 것을 살피며, 농기구를 잘 마련하는 것뿐이다. (중략) 내가 일찍부터 근본을 돈독히 하고 실제적인 일에 힘쓰는 정사에 뜻을 두고, 농서를 편찬하여 여러 주와 군에 반포하려 하였다. 그런데 옛날과 지금의 사정이 다르고, 풍토가 같지 않으며, 가난하고 부유함을 고르게 하기 어렵고, 일과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정하여 그것만 지키게 할 수가 없다. 대궐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람마다 각자 좋은 방책을 아뢰어라. 그러면 나는 그것을 받아서 절충하여 사용할 것이니, ‘농가(農家)의 대전(大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아, 서울과 지방의 관리와 백성들은 모두 잘 듣고 알도록 하라. 농사에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견해가 있으면, 상소를 올리거나 책으로 엮어, 서울은 의정부에 바치고 지방은 감사에게 바쳐라. 그리고 이상한 풍속에 빠지거나 예전 방법에 구애되지 말고, 산골과 바닷가, 기름지고 척박한 땅에 따라 마땅한 방법을 아뢰어라. 사람의 계책이 훌륭하면 하늘의 돌보심을 받을 것이니, 하늘이 풍년을 내려 곡식을 많게 하여, 우리 백성들이 쌀밥을 먹고, 나와 태평세월을 함께 한다면, 위로 우리 선왕께서 백성을 편안케 하고 농정에 힘쓴 훌륭한 덕과 지극한 사랑에 부응하게 되고, 나 소자가 씨 뿌리고 수확하는 지극한 정성과 애쓰는 마음을 돕게 될 것이다. 내가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것이 농부들이 가을 수확을 기다리는 것보다 더 간절하다.

1798년(정조 11)에 정조가 작성한 글인데, 원제목은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윤음(勸農政求農書綸音)’이다. 정조는 농경국가인 조선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농사를 권장하는 일이 많았다. 매년 1월이 되면 농사를 권하는 윤음을 반포하고, 가을이 되면 선농단에 행차하여 적전에서 곡식을 수확하는 모습을 관람한 것도 모두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정조는 시간이 지나면서 농법을 개선할 수 있는 더욱 혁신적 방안을 생각했는데, 이 윤음에는 그런 정조의 구상이 나타난다.

정조는 먼저 영조가 적전에 나가 친경을 거행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임을 거론한다. 60년 전인 1739년에 영조는 적전에 행차하여 친경(親耕)을 했다. 친경이란 국왕이 소가 끄는 쟁기를 밀면서 밭갈이를 하는 행사인데, 국왕의 시범을 통해 백성들에게 농사를 권장하려는 의미가 있었다. 영조를 계승한 정조는 자신의 조치가 선왕의 업적을 계승하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다음으로 정조는 수전 농업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수리(水利)를 일으킬 방안과 토질에 적절한 종자를 선택하고 재배하는 법, 농사짓기에 적합한 농기구에 대한 대책을 말하라고 했다. 국왕이 당대 농업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질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정조는 농사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한 새 농서를 편찬하려 했다. 이는 기왕에 나온 중국과 조선의 농서를 검토하는 동시에, 조선 각지에서 경험적으로 터득한 농법을 합치려는 구상이었다.
정조의 윤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응답했다. 윤음이 반포된 직후 글을 올린 사람이 27명이었고, 농서를 올린 사람은 40명이나 되었다. 유명한 박지원의 ‘과농소초’나 박제가의 ‘북학의’, 서호수의 ‘해동농서’도 이에 응답하여 나온 책이었다. 정조의 윤음에는 백성의 실질적 삶에 관심을 두었던 그의 모습이 나타난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new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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