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캠브리지에서 울고 웃고
⑨ 캠브리지에서 울고 웃고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8.04 18:55
  • 호수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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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첫 펀드레이징 여행

“It's not good to touch her.” 교실에 긴장 섞인 웃음소리가 맴돌았다. 첫 펀드레이징주를 앞두고 우린 길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가 잡지를 팔지에 관해 돌아가며 역할극 중이었다. 행인 역의 친구가 잡지를 팔고 있는 내게 여러 번 애드립을 건넸고, 나도 모르게 장난스레 그녀 팔을 덥석 잡았다.

펀드레이징을 위해 캠프지에 도착.
이에 관해 티쳐 오사가 내게 충고를 던진 것이다. CICD의 DI들은 정해진 스케줄 하에 스터디주와 펀드레이징주를 번갈아 맞이하게 된다. 보통 학생들은 학교 근처가 아닌 다른 도시로 이동해 우리가 직접 만든 아프리카 관련 잡지를 파는데, 이를 위해선 교통편 및 숙소를 알아보고 교사들로부터 자신이 짠 예산에 관해 승낙을 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

나의 첫 번째 펀드레이징 도시는 캠브리지로 낙찰됐다. 기차에 올라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부모님께 카드를 썼고, 예쁜 도자기 찻잔세트의 포장을 단단히 마쳤다. 펀드레이징 기간 동안 나와 다른 한국친구가 머물 곳은 ‘couch surfing’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한 상냥한 체코 커플의 집, 그들은 먼 타국에서 봉사자의 신분으로 이곳까지 온 우리를 환대했다.

엔돌핀이 상승된 우리는 짐을 풀고 곧바로 잡지를 들고 시내로 나갔다. 연말을 앞둔 시기여서 사람들이 생각보다 관대했다. 큰 쇼핑몰 입구에 서서 해가 질 때까지 잡지를 팔았는데 첫 날 나는 100파운드에 가까운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다음날, 북적한 거리에 서서 결심했다. 사람을 가리지 말자고. 그 때 내 눈 앞에 피어싱에 헐렁한 후드티를 입은 한 젊은 남자가 감지됐다. 그는 친절하게 내 얘기를 다 들어줬지만, 마지막엔 동전 대신 행운을 빌어주며 떠났다.

잠시 후 거리에서 들려오는 환상적인 아코디언 소리, 알고 보니 그는 거리의 악사였다. 나는 ‘에디’라는 이 친구와 같은 길목에서 웃으며 각자의 펀드레이징을 즐겼고, 결국 점심을 함께하는 친구가 됐다. 셋째날 70파운드, 넷째날 60파운드를 벌고 나는 지독한 감기를 얻었다.

친구가 일하는 한국레스토랑에서 식사 중.
고열과 기침 때문에 결국 펀드레이징도 포기해야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컴퓨터 매장에서 잠시 이메일을 확인하는데 캠브리지에서 보낸 소포를 받았다는 엄마의 편지가 도착해 있었다. 포장을 끄르며 울컥했다는 내용, 편지를 다 읽어 내려가기도 전에 나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재작년 인도에 다녀와 장티푸스를 얻었을 때도 울지 않았던 내가 이번에 펑펑 울었다. 체코 커플은 나를 위해 손수 약을 챙겨다 줬고, 함께 온 친구는 밤늦게까지 찬 수건을 수차례 내 이마에 대 줬다. 새벽 무렵, 끙끙대는 내 뒤편에서 친구가 숨죽이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아픈 바람에 주변사람들이 힘들구나.’ 아프지 말아야겠단 주문을 외우며 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떠나기 전날, 상태가 호전돼 외출이 가능해졌다. 캠브리지에서 공부 중인 절친한 친구도 만났다. 이 친구는 한국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는데 나는 그 곳에서 간만에 사치를 부렸다.

김치찌개, 뚝배기 불고기, 떡볶이. 친구는 바쁜 와중에도 내가 아팠다는 얘기에 자꾸 김치며 밥공기며 내왔다. 꿈꾸던 달콤한 수다시간도 주어졌고, 난 마침내 캠브리지에 도착한 첫 날처럼 웃게 됐다. 첫 날 펀드레이징 성적이 좋아 의기양양했었지만, 마지막 사흘간은 한 푼도 벌지 못한 셈이 됐다.

에디와 다음날 다시 만나자며 헤어졌었는데 아픈 바람에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다. 다시 못 만날 사람들처럼 포옹하고 헤어진 데에는 다 뜻이 있었던 걸까, 삐뚤빼뚤 적힌 그의 이메일주소를 손에 쥐고 학교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작별인사, “캠브리지야 안녕, 다음에도 웃으며 만나자!”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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