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CC’와 ‘CCC’ 사이에서
이른바 ‘CC’와 ‘CCC’ 사이에서
  • 장유정(교양학부) 교육전임 강사
  • 승인 2009.08.04 19:11
  • 호수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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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Campus Couple(이하 CC로 약칭)’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주문을 받고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대를 다닌 탓에 CC는 꿈도 꾸어 볼 수 없었고, 더 나아가 학부 4년 내내 연애 한 번 못해본 지진아(?)였던 내가 CC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격 미달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탁을 수락한 것은 최근에 읽은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열음사, 2004)이라는 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20대 초반에는 간혹 낭만적인 CC의 삶을 나름대로 상상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CC는 동일한 캠퍼스에서 만나 연애를 하는 사이인지라 여러 모로 장점이 많다. 가장 좋은 점은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연애에 드는 비용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시간을 내서 따로 만나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래저래 신경 쓰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CC에게는 학교가 곧 데이트 장소가 된다. 오직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듯, 교정 곳곳은 바로 낭만적이고도 쾌적한 사랑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굳이 외부의 식당을 찾아가지 않아도 교내 식당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밥은 그 자체로 두 사람에게 훌륭한 만찬이 될 수 있다.

그렇게 CC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CC가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바로 헤어졌을 때 나타난다. 누가 헤어질 것을 미리 알고 사귀겠냐마는, CC로 지내다가 헤어지면 그 여파와 후유증은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헤어진 사람을 같은 공간에서 계속 마주치는 것도 힘들지만 주위의 말과 시선에 또 다시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CC를 시작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해야 하고 책임감도 느껴야 한다. 허나,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길을 걷다, 내가 언제 어떤 차에 치일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그 사람이 같은 캠퍼스에 있는 사람이라면 불가피하게 CC가 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우리가 명심할 것이 있다. 단지 CC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은 자기희생이 아닌 자기 확대와 성장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간혹 CC 중에 상대의 수업 과제를 비롯해서 모든 것을 대신 해주려는 사람이 있다.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CC이었던 내 친구의 남자친구는 내 친구에게 밥을 떠 먹여 주고 신발까지 신겨주곤 하였다. 그러나 평생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면 애초부터 상대의 모든 것을 대신 해 줄 것처럼 덤벼드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예뻐해 주는 나의 인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개별적이고도 독립적인 존재이다. ‘둘이 하나가 되면 우리’가 되는 것이지, 온전하게 ‘하나’로 일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이 세상에 오직 둘 만의 사랑만 존재하는 듯이 행동하는 CC는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오죽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이들을 응징하려는 CCC(Campus Couple Cutter)까지 등장했겠는가? 스캇 펙이 그의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정신적 성장이며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 고독한 길은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다른 사람의 개별성을 존중하며, 분리 또는 상실의 위험에 직면하면서까지 상대의 독립성을 길러 주려 애쓰는 것이다. 각자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사랑하는 사람의 격려는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같은 교정에 있다면 이 얼마나 든든한가? 바야흐로 봄이다. 이제 우리 교정에는 수많은 봄꽃의 향연이 시작될 것이다. 아울러 곳곳에 CC도 출몰할 것이다. 이들이 그릇된 행동을 하여 분노에 찬 CCC를 양산하지 않기를, 오히려 이들의 진정한 사랑으로 교정에 사랑의 기운이 충만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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