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⑪ 새벽 2시 넘도록 붓을 잡고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⑪ 새벽 2시 넘도록 붓을 잡고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8.04 19:32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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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미션

할리데이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우리팀은 미션 하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바로 덴마크에서 열리는 새해 콘서트 준비를 돕는 것. 새해 콘서트는 trouble kids들을 관리하는 덴마크 folk school들이 함께 협력해 매년 주최하는 행사로, 장장 12시간에 걸쳐 점심과 저녁은 물론 유명 음악가들의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큰 이벤트다. 내가 있는 영국 CICD 역시 일종의 자매학교로서 매년 이 콘서트를 함께 준비하고 있다.

▲ 완성된 페인팅 앞에서 나와ㅏ Leili.


아프리카로 봉사가게 될 DI(Development Instructor)들이 왜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지 묻는다면, DI들은 각기 프로젝트에서 배정된 후 다른 스텝들을 훈련시키거나 계획을 짜고 프로젝트 리더와 협력하는 등 머리와 몸을 함께 쓰는 봉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이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미리 익혀두는 건 필수이다. 이런 면에서 새해콘서트 준비는 우리에게 득이 될 실습이었다.

덴마크로 떠나기 일주일 앞두고 우린 정신없이 바빠졌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는 ‘새bird’로, 몇몇 팀원들은 콘서트홀 천장에 매달 큰 새 조형물을 만들었고, 어떤 친구들은 우리 학교를 소개하는 보드를, 또 다른 친구들은 털실과 단추, 종이 등을 이용해 다양한 새를 만들었다.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업을 좋아하는 내 경우 친구 Leili와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를 듣고 하얀 천위에 가로세로 244cm의 큰 페인팅을 그리는 과제를 선택했다.

늘 혼자 글을 써와서일까, 뭔가를 함께 완성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던 내게 Leili와 함께 하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우선 우리는 함께 ‘헝가리안 댄스’를 듣고 각자의 의견을 공유했는데 내 경우 음악에서 죽은 나무, 균열 뒤에 중간 중간 희망의 움직임을 봤다고 한 반면, 그녀는 춤추는 발레리나를 봤다고 했다.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다가 결국 하루 지나 우린 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발레리나 및 태양을 그리기로 했고, 천을 반으로 잘라 중간을 털실로 이어 균열과 화합의 느낌도 살리기로 했다.

물감을 짜고 내가 원하는 색을 만들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붓의 낯선 촉감에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미술학교를 졸업했다는 Leili의 격려에 힘을 얻어 곧 스케치를 시작할 수 있었다. Leili는 매우 감성적인 19살 친구로 자신이 스케치한 발레리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저녁을 굶을 정도였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한 9월팀 다른 친구의 도움으로 곧 맘에 드는 발레리나 스케치를 얻자 다시 싱긋 웃어보였다.
▲ 그림을 그리다 친구 Leili와 잠시 장난 중.

우리 둘은 아이디어에 좀 더 색을 입히고, 그림을 수정하느라 일주일간 새벽 2시가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나치게 예민한 것에 고민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특별한 감수성이고, 우리 작품을 더 멋지게 완성시켜줄 네 장점이라며 수차례 그녀를 다독였다. 함께 뭔가를 만들어나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나는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이 진정 친구가 되어 서로를 격려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덴마크로 떠나는 날 새벽 6시, 우린 학교 내 스포츠홀에 앉아 두 조각의 큰 페인팅을 털실로 엮는 마지막 작업을 했다. 이 페인팅은 덴마크의 다른 학교 DI들이 완성한 페인팅과 나란히 콘서트장의 한 벽면에 전시될 예정이었다. 페인팅은 꽤 만족스럽게 완성됐고 우린 서로에게 격려의 포옹을 아끼지 않았다. 가끔 덤벙대는 Leili가 우리 페인팅을 자신의 캐리어에 넣어 가겠다며 나섰고, 나는 그녀에게 윙크와 함께 OK 사인을 보냈다.
콘서트는 앞으로 일주일 남았고, 우리팀은 덴마크의 각 high folk school에 2명씩 배정돼 trouble kids들과 함께 다른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내 경우 바다 건너 스웨덴이 보인다는 Hellebaek의 학교로 배정이 됐다. 덴마크 가는 비행기 안, 나는 Hellebaek school의 미션을 전해 듣고 움찔하고 말았다. “1800인분 식사를 준비하라고? 180인분이 아니고?”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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