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릭은 사고와 표현 아우르는 소통의 학문 올바른 소통 통해 개개인은 성장할 수 있다
레토릭은 사고와 표현 아우르는 소통의 학문 올바른 소통 통해 개개인은 성장할 수 있다
  • 글 : 박준범 기자, 사진 : 도우리 수습기자
  • 승인 2009.08.04 19:56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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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사학회
김종영(고려대 레토릭연구소)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때문에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더욱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고 열린 사고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죠.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부침을 겪어온 학문, 레토릭. ‘화술’, ‘번지르르하게 말하는 기술’ 등의 의미로 왜곡되기도 하는 레토릭의 진정한 의미와 현대 사회에서의 가치를 김종영 한국수사학회 이사로부터 듣는다.  
 <편집자 주>

   경청     먼저 토론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레토릭을 연구하시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성숙한 토론(또는 성숙한 소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

토론이란 한 공동체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구성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가지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자기와 남의 생각을 비교하고 어떤 의견이 더 합리적인가를 따져 가며 검토해가는 과정이 되는 셈이죠. 이렇게 보면 토론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경청은 ‘소통의 능력’ 중 가장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하일 엔데의 『모모』라는 소설을 아실 겁니다. 주인공 모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그런 내용이었잖아요?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듣는 것이 잘 듣는 것일까요? 우선 ‘인내하면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의 의견을 드러내고 싶어 하거든요. 하지만 실은 이런 고집이 소통의 흐름을 막는 거죠. 때문에 인내하면서 듣기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겁니다. 그런 다음 ‘정확하게’ 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상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를 알아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청각만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상대방에게 쏟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의 판단을 중지시키고 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죠. 끝으로 ‘분석하며’ 들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물론 인내하면서 정확하게 듣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인내하면서 들어줘야 그 의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분석할 수 있다는 거죠. 이 단계의 듣기를 통해 상대의 말 속에 들어 있는 객관적 내용뿐만 아니라, 행간에 숨어 있는 욕구나 은폐된 감정이나 요구 등의 각종 메시지를 끄집어낼 수 있게 되어 상대와 진정한 소통이 가능하게 됩니다.

   

  배려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어렵다고 느껴진 것이 ‘조 모임 과제’였거든요. 혼자 하는 과제면 그냥 알아서 하겠는데,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려다보니 그런 과정들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토론(또는 조 모임)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참여자의 심리적 위축감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런 의견을 내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닐까?’라는 마음 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에 혹시 맹점이 있지는 않은지, 내가 덧붙일 내용은 없는지’ 등의 자세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게 해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의 외연이 확장되는 결과를 유도해야 합니다.

구성원 모두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리더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상대적으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회의 진행을 하면 안 되죠. 모두의 의견을 균등하게 받아들인다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합니다.

성숙한 토론을 위해 토론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솔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고 주제를 지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토론하는 사람보다 그가 하는 말의 정당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랬을 때야 토론이 논점에서 이탈하지 않고 흔히 볼 수 있는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론이 시간낭비라고 느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말꼬리 잡고 계속 싸우게 되는 경우가 생겨서, 그리고 토론 참여자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 사이에서 현안이 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적극적 사고, 즉 준비가 없다면 토론 자체가 시간낭비가 되는 거겠죠. 또한 토론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주장에 대해 입증해야할 의무를 져야 합니다.

물론 입증된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이 주장은 늘 반박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비로소 제시된 의견이나 주장이 비교되고 검증될 수 있는 것인 데, 이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해결방안이 제시될 수 있고, 구성원들의 갈등이 해결될 수도 있게 되는 거죠. 토론자들의 윤리적인 태도 역시 매우 강조되고 있는데, 우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하여 ‘그가 틀렸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하는 거죠. ‘다르다’와 ‘틀리다’는 의미가 엄연히 구분됩니다. 이것만 이해해도 토론은 말싸움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즐거운 소통과정이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성찰       다음으로 ‘소통과 성장’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어마어마한 ‘변절’이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조직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게 느끼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 대해 선생님의 의견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가치관과 신념 등의 인생관과 결부될 때 큰 틀이 흔들리는 경우는 드물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생각이라고 해서 모두 다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찰을 통해 더욱 발전된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며 열린 사고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나 조직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게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마 한국문화의 집단주의적 성향에서 그 단초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율성보다 집단의 조화를 중시하며 살아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의 의견을 고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태도는 자칫 과거의 틀에 얽매여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기도 하죠.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각을 더욱더 유연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남이고, 남의 생각은 우리와 다르기에 모조리 틀렸다고 하는 일방주의적 사고를 극복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들의 생각 속에 들어 있는 바람직한 내용을 내 생각에 적극 수용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교양     소통과 성장에 있어 인문학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당장 돈 되는 학문’이 아닌 文·史·哲의 특징으로 대학과 사회에서 인문학이 점점 자리를 잃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의 대화, 조직과 조직 간의 소통과 성장에 있어서 文·史·哲(또는 인문학적 지식)의 소양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혹자는 인문학의 위기를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달리 생각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인문학이 더욱 필요한 시기예요. 특히 소통의 부재로 일컬어지는 현대사회는 바로 인문학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우리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를 꾸려갑니다.

이 때 필요한 능력이 바로 인문학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곧 인간학이기 때문이죠. 원래 고전적 의미의 인문학은 진리탐구를 목표로 하는 학문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따지고 보면 이것도 인문학이 진리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기보다는 진리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의견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연하면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진리라고 하는 것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따져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인문학은 언어를 통해 나타낼 수 있는 인간 삶의 전 영역을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적 소양은 지식기반사회에서 더 없이 소중한 재화를 창출하기 위한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고안된 생각에 알찬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 깊이 숙고하고 성찰하는 자세가 필요한 데,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점을 추구하고 있어요.

만나고 나누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의사소통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 성분인데, 이를 더욱 의미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반성하는 전반적 행위를 바로 인문학이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인문적 소양이 사람들간의 대화, 조직과 조직 간의 소통과 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다고 하겠습니다.

      레토릭       레토릭이라는 것이 어떤 학문인지 궁금해하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경우도 있고, 이 학문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을텐데요, 마지막으로 레토릭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수사학으로 번역되고 있는 레토릭은 생각을 발견하고 잘 정리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학문이죠. 그러니까 인간의 사고와 표현 전체를 종합적으로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사학은 여러 가지 효과를 목표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설득인데, 설득과 관련한 각종 학문이론들은 수사학과 연관됩니다. 그러니까 협상과 상담을 다루는 각종 학문분야가 여기에 연결될 수 있죠. 예컨대 언어학, 심리학, 경영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이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수사학은 문화의 차이로 생기는 사고와 표현의 차이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질적인 문화를 비교하여 인류의 공통적인 요소를 확인하는 작업도 하고 있는 셈이죠. 이때의 수사학을 비교수사학 또는 문화상호 수사학이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수사학은 예술분야와도 연결되어 있어요. 음악의 발성, 영화나 연극 분야의 연기론에서도 수사학의 기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말과 소리, 말과 행위, 말과 이미지의 결합을 효과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수사학에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죠. 이밖에도 많은 학문분야에서 수사학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이제는 분과학문이 생겨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컨대 문학수사학, 정치수사학, 경제수사학, 법률수사학, 광고수사학, 영화수사학, 설교수사학 등 여러 분과학문들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여러 학문분야의 이러한 동향을 읽어내고 수사학을 종합학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쨌든 시작부터 수신자를 염두에 두고 소통을 중시해왔던 수사학의 의미는 앞으로도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입니다. 
  
 

글 : 박준범 기자, 사진 : 도우리 수습기자
글 : 박준범 기자, 사진 : 도우리 수습기자

 psari@dankook.ac.kr, wrd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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