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사이코패스의 형사책임능력
② 사이코패스의 형사책임능력
  • 최호진(법학과) 교수
  • 승인 2009.08.04 23:27
  • 호수 1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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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경기도에서 젊은 여인이 잔인하게 강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시작으로, 1991년까지 10차에 걸쳐 연이어 발생한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다룬 살인의 추억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8년 9월에 발생한 8차 사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9건 모두가 해결되지 않은 사건으로, 범행수법이 아주 잔인하고 대범해 1980년대 말 큰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이외에도 1975년 17명을 살해한 김대두 사건, 1982년 경남 의령에서 동거녀와 말다툼 후에 술에 만취한 우범곤 순경이 총기와 수류탄을 가지고 주민 80여명을 살해, 중경상을 입히고 자살한 이른바 우순경사건, 1993년의 지존파사건, 1994년의 온보현 사건, 1996년의 막가파사건 등이 있지만, 특히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부녀자 20여명을 살해한 유영철 사건은 사이코패스라는 생소한 개념을 알려지게 한 사건이다.

이후에도 2004년부터 2006년의 정남규사건의 경우에도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모든 연쇄살인범들이 그러하진 않지만, 연쇄살인범들에게는 이른바 사이코패스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이코패스란 일반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죄책감이나 후회를 못 느끼며, 대인관계에 있어 냉담, 교활한 특성을 보이고, 충동적 또는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을 지니고 있어, 잠재적으로 범죄위험성을 지닌 자들을 말한다.

즉 특유의 이상인격 내지 그가 지닌 기질적 특성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위가 위법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억제하여 적법한 행위로 나아갈 수 있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고도의 재범 위험군에 속하는 자들이다. 사이코패스 진단도구인 PCL-R의 평가목록 중 일부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는 자기중심적이며 과장이 심하고, 후회나 죄의식이 결여되어 있으며,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며, 모욕이나 경멸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쉽게 감정이 폭발하여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며, 일체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없다고 한다.

사이코패스의 형사책임능력이 있는가에 대해서 형법 학자들간의 논의가 있다.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형법이론상 구성 요건 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사이코패스의 경우 세 번째 조건이 책임이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문제된다. 즉 범죄자가 법규범을 통해 적법한 행위와 위법한 행위인지를 구별해낼 수 있고, 이에 따라서 적법한 행위를 선택하여 행위 할 수 있는 능력, 즉 책임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법한 행위를 선택하고 행한 것에 대하여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사책임능력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중 하나인 심신장애에 사이코패스가 인정될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심신장애의 사유로 정신병, 정신박약, 심한 의식장애 기타 중대한 정신이상상태, 그리고 성격적 결함을 인정하고 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명확한 판례는 보이지 않지만 성격장애에 대한 종전의 대법원판례를 분석해보면, 사이코패스에 대해서는 형사책임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할 것 같다. 하지만, 사이코패스에게 완전한 책임능력을 인정하여 형벌을 부과한다고 하더라도 고도의 재범위험군에 속하는 이들이 가석방 또는 만기 출소 후에도 계속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이들을 일반적인 범죄자유형으로 분류하여 형사 처우할 것이 아니라 심신장애자 또는 심신미약자에 준하여 현행 치료감호법에 따라 치료감호처분이 부과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다시 자신이 행한 살인을 추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최호진(법학과) 교수
최호진(법학과)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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