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동궁 관리에게 보내는 편지
⑭ 동궁 관리에게 보내는 편지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08.05 10:07
  • 호수 12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을 제왕학의 근본으로 삼겠다고 다짐

삼대 이후로는 삼대의 학문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한나라 문제(文帝), 당나라 태종(太宗), 송나라 효종(孝宗) 같은 사람들이 있어 조금 현명하다는 칭찬을 듣고 소강(少康)의 정치를 이루긴 했지만, 모두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의 학문에 근본을 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적이 인의(仁義)에 가까운지를 추적해보면, 모두 맹자가 말한 ‘오패(五?)는 인의를 빌린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빌린 것은 처음에는 강하지만 끝내는 반드시 그 본색을 드러내어 엄폐할 수가 없습니다. (중략)

합하여 논하자면, 세 군주의 병통은 ‘가식’이란 한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나라 문제가 한밤중에 가의(賈誼)에게로 바싹 다가앉은 것도 그가 아는 것이 참[眞]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당나라 태종이 간쟁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다는 것도 그가 좋아하는 것이 참이 아니었다는 것이며, 송나라 효종이 한밤중에 촛불을 밝히고 주자의 상소문을 읽은 것도 그가 공경하는 것이 참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아는 것이 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신에 미혹되었고, 태종이 좋아하는 것이 참이 아니었기 때문에 위징(魏徵)이 죽은 다음에 그의 비를 넘어뜨렸으며, 효종이 공경한 것이 참이 아니었기 때문에 끝내는 주자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일은 서로 다르지만 한마디로 총괄하여 말하면 ‘가식’일 뿐입니다. 이로써 본다면 제왕의 학문은 어찌 격물ㆍ치지ㆍ성의ㆍ정심에 근본을 두지 않고 그저 기질의 아름다운 것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둥궁(東宮) 시절의 정조가 소속 관리에게 보낸 편지글인데, 원래의 제목은 「답궁료(答宮僚)」이다. 지난번에 우리는 정조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뜻을 분명히 세우겠다고 답변하는 편지를 읽었는데, 이번의 편지는 정조가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을 제왕학의 근본으로 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다.

『대학』은 유학자의 필독서에 해당하는 책인데 여기에는 3강령과 8조목이 수록되어 있다. 정조가 중시하는 격물 · 치지 · 성의 · 정심은 『대학』의 8가지 조목 가운데 4가지에 해당하는데, 이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고(격물), 사물의 도리를 깨달으며(치지),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하고(성의), 마음을 바로잡는다(정심)’는 뜻으로 개인의 수양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정조는 삼대 즉 하 · 은 · 주 시대에는 유교의 이상적인 정치가 이루어졌지만 그 이후로는 이를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후대의 모범적인 군주로 한 문제나 당 태종, 송 효종 같은 인물이 거론되지만, 이들은 소강(少康)의 정치를 이루었을 뿐 삼대의 정치를 제대로 회복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정조는 이들의 부족한 점을 거론하는데, 한 문제는 가의(賈誼)가 들려주는 귀신 이야기를 경청하면서도 그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귀신에 빠지는 정치를 했고, 당 태종은 위징을 좋아하여 그의 비문까지 지어주었지만 결국 그의 비석을 무너뜨린 것은 위징을 미워하는 마음이 일찍부터 있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또한 송 효종은 주자가 대학자임을 알고 한밤중에도 촛불을 밝히고 그 상소문을 읽었지만, 결국 주자의 학문과 정책을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므로 이런 행동은 가식이었던 것으로 이해하였다. 정조가 이글에서 강조하는 것은 ‘참(眞)’이요 ‘올바름(正)’이다.

위에서 거론한 세 군주가 가의나 위징, 주자를 참으로 좋아했다면 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훌륭한 정치를 했겠지만, 남에게 보이려고 겉으로만 응했기 때문에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정조의 발언을 적용한다면 ‘참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는 진심으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가?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고, 남에게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아니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도서관에 남아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그 목적이 달성되자마자 공부를 손에서 놓게 될 것이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