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검은손들을 맞잡고 나니
18. 검은손들을 맞잡고 나니
  • 허지희(문예창작4)
  • 승인 2009.08.13 18:03
  • 호수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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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말라위에서 꼬마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말라위 브론타이어의 헌 책방은 의외로 규모가 컸다
5월 14일, 에디오피아를 경유해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 도착했다. 런던에 있는 말라위 대사관에서 한국인은 비자가 필요 없다는 확답을 받은 터였으나, 입국심사에서 비자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고 말았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함께 일하는 NGO Humana People To People(말라위에선 DAPP라 칭함)로부터 받은 초청장이 있었기 때문에 우선 입국이 허용됐다. 조건은 다음날 오후 12시까지 비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우선 나는 그러겠노라하고 확인증을 챙겼다.
릴롱궤에서 다시 블론타이어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우연찮게 재미난 인연을 만들었다. 옆자리에 앉은 가나 출신의 ‘마이콜’이라는 청년이었다. 그는 한 NGO에 소속되어 HIV관련된 일을 하며 어린 아이들에게 식량과 약 등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함께 아프리카에 관해 얘기하며 2시간이 훌쩍 가버렸고, 잠비아로 향한다는 그는 기회가 되면 언젠가 꼭 내가 일하게 될 헌책방에 들리겠노라하며 메일 주소를 적어주고 떠났다.
블론타이어에 도착, 첫 이틀간 DAPP 관계자로부터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 내가 도착한 시기가 말라위 대통령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이어서 예상치 못한 주의사항도 듣게 됐다. 가령 현 대통령인 ‘빙구’와 다른 후보가 속한 당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의 옷을 걸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DI하우스 외에 다른 곳에서 숙박하지 말라는 것이나 히치하이킹을 하지 말 것 등 다른 얘기들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날, 골치를 썩이고 있던 비자 문제도 쉽게 처리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음날 팀원들과 함께 작고 외진 마을을 방문했다. 나는 그 곳에서 TV에서나 보던 빈곤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었다. 옷이라고 하기엔 너무 낡은 헝겊을 걸친 꼬마 아이들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나를 향해 거듭 “아중구!(Chichewa로 ‘백인’이라는 뜻)를 외쳤다. 손을 내밀며 돈이나 사탕을 달라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보통 꼬마들은 나를 보고 신기한 듯 꺄르르 웃거나 멀리서 수줍게 바라보는 것에 그쳤다. 내가 먼저 안녕을 외치고 다가가면 그들도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 작고 검은 손들을 맞잡으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덕분에 나는 말라위에 머물 6개월간 이 체온을 잊지 않겠노라 다짐할 수 있었다.
이틀간 휴식을 마치고 팀원들이 각자 프로젝트를 수행할 지역으로 이동했다. 나는 블론타이어 DI하우스에 헝가리, 일본에서 온 두 친구와 살게 됐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DI하우스는 중산층이 사는 동네에 위치했는데, 네 가구마다 차 한 대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얼마 전까지 이태리에서 온 한 DI만이 머물렀다는 집은 창고를 연상케 했다. 예전 같았으면 미뤘을 집안일을 나는 자진해서 쓸고 닦고 고쳤다. 이는 지난 6개월간 CICD에서 생활하며 나도 모르게 몸에 익힌 습관이었다.

말라위 한 마을에서 만나 꼬마들

다음 날 내가 슈퍼바이저로 일하게 될 헌책방을 방문했다. 예상과 달리 서점은 블론타이어 중심가에 있는 빌딩 2층에 위치해있었다. 규모도 작지 않은데다 내가 인사한 직원만 5명이나 되어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 리더가 날 현지 스태프들에게 소개할 때 이 친구가 서점에 새바람을 몰고 와 줄 것을 기대한다는 말을 했다. 몇몇 스태프들은 환영한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몇몇은 멀리서 눈인사를 하는데 그쳤다. 그들 입장에선 갑자기 나타난 ‘아중구’를 보고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묘하게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리라. 깨끗하게 차려입은 스태프들과의 대면에서 나는 며칠 전 아프리칸 아이들과 손을 맞잡으며 체험한 뭉클함을 느낄 순 없었다. 하지만 때로는 뭉클함도 내가 노력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일부터 정식으로 일이 시작된다. 긴장도 되지만 웃음도 따라 나오니 참말 다행이다.

허지희(문예창작4)
허지희(문예창작4)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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