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거제도
⑬ 거제도
  • 김은비 기자
  • 승인 2009.08.15 16:32
  • 호수 12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만난 엄마 품 같은 세상, 거제 그 당시 나는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때가 있다. 나 역시 그 선택의 기로에서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주저앉으려던 참이었다. 그 때 거제를 만났다.

일행 총 여섯 명 중에 네 명이 서로 연인인 그 조합에 나는 낄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나머지 솔로 한명의 애원과 협박에 못 이겨 따라나섰다. 같이 가지 안으면 일 년이 가시방석일 거라는 말이 꽤나 무서웠다.

우리일행은 여행 일정동안 거제도에서 양대산맥을 이룬다는 두 가지 해수욕장을 섭렵하기로 했다. 먼저, 몽돌 해수욕장에 들렀다가 민박을 잡아둔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몽돌 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파도에 깎인 동글동글한 몽돌이 가득 깔린 해수욕장이었다. 커다란 바위절벽이 그늘을 만들어 주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바닥을 가득 매운 돌들의 푸른빛도 시원함에 한몫했다. 여느 해수욕장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해수욕장과 계곡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 했다. 시원한 그늘과 돌, 그리고 넓고 광활한 바다. 마치 어느 산새의 알 같은 동그란 돌맹이를 집어 들며 언제쯤 나도 이렇게 모난 곳 없이 둥글둥글 해질 수 있을까 생각했다.

‘땡볕, 불볕 놀아, 밤에는 어둠 놀아 여기 새빨간 찔레 열매 몇 개 이룩함이여!’ 인고의 시간을 거친 후에야 열매가 맺힌다는 고은 시인의 시를 읊조리며 파도에 수도 없이 깎였을 돌을 생각하니 나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다. 식사 때가 찾아오자 일행들은 돌 감상 중인 나를 재촉했다.

나는 아직 감상해주지 못한 각양각색의 수석(壽石)들을 뒤로하고 민박을 잡아둔 구조라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려야했다. 노란 모래가 수북한 구조라 해수욕장을 마주하고 선 민박집의 이름은 ‘파도’였다. ‘파도민박’. 이곳에 있으면 파도가 나를 깎아 줄 것만 같았다. ‘파도민박’은 넓게 펼쳐진 평상이 인상적이었다. 그 평상에 앉으면 그야말로 ‘모든 것이’ 보였다. 해변보다 높게 위치해 있어서 해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타워팰리스를 사람들이 왜 그리 좋게 치는지 알 것 같았다.

노란 튜브를 타고 파도를 타는 아이들, 핑크색 비키니를 입고 재잘대는 아가씨들, 저 멀리 바나나 보트에서 물로 내동댕이쳐지는 구릿빛 남자들…. 모두 활기에 차있었다. 바다의 파란빛, 모래의 노란빛, 여인들의 핑크빛, 남자들의 구릿빛들이 뒤엉켜 해변은 그야말로 무지개 빛깔이었다.

구조라 해수욕장은 엄마 품 같은 곳이었다. 수줍게 벗은 발을 내딛자 노란빛 부드러운 모래가 포근히 감싸주었다. 도시의 콘크리트를 누비던 발은 구조라의 따스한 모래 앞에 무장 해제되었다. 고운 모래의 발을 감싸는 느낌은 사람이 본래 흙으로 지어졌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문득 따뜻하고 보드라운 모래 속으로 푹 빠지고 싶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물속에 푹 빠져있었지만. 바닷물은 얕고 맑아 아이들이 놀기에 좋았다. 물속에서 꼼지락대는 내 발이 선명하게 보였다. 발만 담갔을 때는 옷을 젖게 할 생각이 없었는데 어느새 나는 목만 빼꼼히 내밀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일렁이는 낮은 파도가 내 몸을 조금씩 밀쳐냈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분명하다. 나는 거기서 두려움을 빠뜨리고 왔다. 여전히 선택은 나의 몫으로 남겨져 있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을 용기를 얻어 돌아왔다.

김은비 기자
김은비 기자

 sr929@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