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杯盤狼藉
⑫ 杯盤狼藉
  •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09.08.19 01:43
  • 호수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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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도 적당히 먹으면 좋은 음식, 상황에 따라 조절하며 마시는 지혜 필요


1.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2. 술자리가 파할 무렵 또는 파한 뒤 술잔과 접시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

杯 : 잔 배    盤 : 소반 반   狼 : 이리 낭   藉 : 깔개 자


지난 주 학교는 대동제 기간이었습니다. 캠퍼스 전체가 온통 주점 일색이었습니다. 물풍선 터트리기를 하는 등 다른 재미있는 것도 다양하게 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과들은 주점을 차려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반은 자신들이 만들어 먹자고 하는 듯 보여 장사 수지는 맞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종류의 게임이나 놀이를 더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대동제였습니다.



술도 음식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술을 음식으로 여기지 않는 듯 보입니다. 밥을 먹을 때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그만 먹습니다. 그러나 술은 약간 취해서도 마시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젊음의 호기로 계속 먹고는 합니다. 모든 사고는 술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술도 적당히 먹으면 좋은 음식입니다. 술과 관련하여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 순우곤전(淳于    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전국 시대 초엽, 제(齊)나라 위왕(威王) 때의 일입니다.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은 위왕은 언변이 좋은 순우곤(淳于   )을 조(趙)나라에 보내어 원군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위왕은 조왕에게 보내는 선물로 황금 백 근에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 열 쌍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순우곤은 크게 웃어 위왕을 당혹하게 했습니다. 위왕이 놀래 순우곤에게 이 선물이 작냐고 묻자 순우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자신이 임금을 만나러 올 때에 돼지 발톱 한 개와 술 한 잔을 바치며 풍년을 기원하는 농부를 보았는데 제물에 비해 많이 바란다는 것이 지금 생각나 웃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위왕은 순우곤의 말을 듣고 조왕에게 보내는 선물을 가득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화로운 선물을 받은 조왕은 기분이 흡족해 대군을 빌려 주기로 하고, 이윽고 순우곤이 10만의 원군을 이끌고 돌아오자 초나라 군사는 밤의 어둠을 타서 철수하였습니다. 전화(戰禍)를 모면한 위왕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어 주연을 베풀고 순우곤을 치하하며 환담했습니다.

위왕이 “그대는 얼마나 마시면 취하는고?”라고 물으니, 순우곤은 “신(臣)은 한 되(升)를 마셔도 취하옵고 한 말(斗)을 마셔도 취합니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자 위왕이 다시 “한 되를 마셔도 취하는 사람이 어찌 한 말을 마실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니, 순우곤은 “예, 경우에 따라 주량이 달라진다는 뜻이옵니다. 만약 고관대작(高官大爵) 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마신다면 두려워서 한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오며, 또한 근엄한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마신다면 자주 일어서서 술잔을 올려야 하므로 두 되도 못 마시고 취할 것이옵니다. 옛 벗을 만나 회포를 풀면서 마신다면 그 때는 대여섯 되쯤 마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동네 남녀들과 어울려 쌍륙(雙六:주사위 놀이)이나 투호(投壺:화살을 던져 병 속에 넣는 놀이)를 하면서 마신다면 그 때는 여덟 되쯤 마시면 취기가 두서너 번 돌 것이옵니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나서 취흥이 일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접시가 마치 이리에게 깔렸던 풀처럼 어지럽게 흩어지고(杯盤狼藉)’ 집 안에 등불이 꺼질 무렵 안주인이 손님들을 돌려보낸 뒤 신(臣) 곁에서 엷은 속적삼의 옷깃을 헤칠 때 색정적(色情的)인 향내가 감돈다면 그 때는 한 말이라도 마실 것이옵니다.” 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어 순우곤은 주색을 좋아하는 위왕에게 “전하,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픈 일이 생긴다’고 하였사오니 깊이 통촉하시옵소서.” 라고 간했습니다. 위왕은 그 후 술을 마실 때에는 반드시 순우곤을 옆에 앉혀 놓고 마셨다고 합니다.

순우곤의 말대로 술은 마시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조절하며 마셔야 합니다. 여기서 과연 술 주(酒)의 부수는 무엇일까요. 대개 사람들은 술이 액체라 삼수(?)라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술주’字의 부수는 ‘닭유(酉)’입니다. 이 글자는 ‘술단지유’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바로 술은 닭이 물 먹듯이 술을 먹으라는 뜻입니다. 닭이 물을 먹기 위해서는 한 모금 부리로 찍고 머리를 올려 물을 마십니다. 닭은 온 힘을 다해서 물을 마시는 것입니다. 술 먹을 때 닭이 물 먹듯 온 힘을 다해, 또는 정신을 집중해서 술을 마셔보세요. 술 먹고 실수할 일이 없습니다.

요즘 캠퍼스에서 안전을 이유로 술을 먹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여! 술을 젊어서 너무 마시면 나이가 들어 먹고 싶어도 마실 수 없게 됩니다. 젊다고 술을 마구 들이키다 보면 몸이 축나고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순우곤의 말대로 술을 극에 달하도록 마시지 말고, 화
날 때 보다는 기분 좋을 때 마시기 바랍니다. 술도 음식이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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