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과거의 복원2 - 오늘을 풍성하게 하는 역사
5.과거의 복원2 - 오늘을 풍성하게 하는 역사
  • 정유정(교양학부) 교육전임강사
  • 승인 2009.08.19 13:15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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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작업 필수적, 고통스럽거나 환멸을 불러올지라도…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등장하는 남주인공 준세이의 작업은 '미술 복원사'이다. 미술복원사는 훼손된 그림을 원래대로, 혹은 원본과 가장 흡사하게 복원하는 사람이다. 준세이의 말을 빌리면, 복원사는 '죽어가는 걸 되살리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리는 일'을 한다. 그래서 복원사를 '시간의 우체부'라고도 한단다. 왜냐하면 미술 복언사는 과거에 그려진 그림을 현재에 수정 복원하여 미래로 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어떠한가? 인문학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과거의 문학, 역사, 철학 등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 걸까? 미술 복원사가 훼손된 그림을 원래대로, 혹은 원본에 가장 흡사하게 봉원하듯이, 인문학에서의 문화 복원 작업도 일차적으로 그렇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두껍게 관찰하고 두껍게 기술하기(Thick Description)'도 사실에 접근하기 위한 전략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가치를 평가하고 의미를 내리기에 앞서 당시의 사료들을 폭넓게 수집하고 정리해서 보여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일제시대에 향유되었던 대중 가요를 대상으로 하여 박사논문을 썼었다. 연구 대상으로 일제시대의 대중가요를 선정한 것은 그 시기에 형성된 대중가요가 현대 대중가요의 모태가 디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늘날의 대중가요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것의 모태가 되는 형성기 대중가요를 이해하는 일은 필연적인 작업이었다, 그러나 기존에 이루어진 대중가요에 대한 언급은 원로 가용인들의 기억에 의존하거나 선험적인 인식과 당위성에 기댄 측면이 많았다. 원로 가요인들의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 기억의 재구성에 따른 오류를 간과할 수 없고, 정확하고도 충분한 사료를 배제한 주장은 언제 허물어질 지 모르는 모래성에 불과하였다.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당시의 사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정리해서 원래 모습 그대로의 대중가요와 그와 관련된 문화 현상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퍼즐 맞추기'와 같았다. 일제시대의 대중가요와 그와 연관된 문화 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내가 접근한 자료는 당시에 발매된 유성기 음반과 음원, 당시의 신문과 잡지 등의 사료였다. 그렇게 당시의 사료를 중심으로 일제시대 대중가요에 접근하다보니, 이제까지 일제시대 대중가요에 대한 편견의 벽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물론, 당시의 신문과 잡지 등이 진실만을 담고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사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음반과 음원은 대중가요와 관련된 사실을 알려주는 소중한 일차 자료이며, 신문과 잡지 등은 당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었다.

 과거를 복원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대중가요를 연구하기 위해 당시의 사료들을 접하면서 나는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일상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른바 '트로트'에 대한 편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당시의 자료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치평가는 차후의 문제이다. 일단 원래에 근접한 과거를 복원해서 보여주는 작업이 요청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지니고 있는 편견들을 하나씩 깨부수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실들을 폭넓게 접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아는 만큼 보인다. 그리고 저마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다. 적어도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들이 단지 우리 마음 속 편견의 산물이 아니기 위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사실에 '두껍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발굴된 사실들은 분명히 현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말한다. "과거를 되새기지도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도 말고 지금을 살아가야만 한다"고. 그렇다. 우리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늘, 지금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오늘을 살기 위해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작업은 필수적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자아를 성찰하는 작업인 것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거나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일일지라도 과거와의 대면은 오늘을 잘 살기 위한 필연적인 작업이다. 결국, 인문학이 하는 일은 과거를 복원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지금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을 살아가는 한, 인문학의 소임은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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