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주의보 16. 믿음과 신뢰, 이 뭉클한 단어들
희망주의보 16. 믿음과 신뢰, 이 뭉클한 단어들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8.19 14:09
  • 호수 1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우린 2008년 11월팀
곧 6개월의 교육이
끝나면 다 함께…

▲팀원들이 서로 협력하며 게임 중인 모습


아프리카로 떠날 날이 훌쩍 다가왔다. 동시에 우리 팀원들은 모두가 CICD생활에 한껏 익숙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6번이 넘는 Building Weekend에 참여한 덕에 페인트칠이나 클리닝의 도사가 되어 있었고, 매주 돌아오는 요리 당번에 다들 자기 나라의 음식 몇 개 정도는 금세 뚝딱 해내는 수준이 됐다. 다음팀 친구들에게 스터디 및 펀드레이징 요령을 귀띔해줄 땐 어느새 우리가 들판의 들꽃처럼 성큼 자랐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이 시점 작년 3월팀 친구들이 아프리카 봉사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내가 가이아로 있던 7개월 전 아프리카로 떠날 채비를 하던 친구들이었기에 반가움이 더 했다. 하루는 그 팀의 한 브라질 친구가 내게 다가와 “예전보다 잘 웃지 않는 것 같다”며 안부를 물었다. 스치듯 던진 말이었지만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스터디와 펀드레이징, 클리닝이 반복되는 6개월의 일상에 나도 모르게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순간이 잦아진 것이었다.


다음 날,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친구 ‘로드리고’가 우리팀을 위해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줬다. 둥글게 모여 앉은 우리들은 한 사람씩 멀찍이 놓인 천속의 무언가를 보고 돌아오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나는 마지막주자였는데, 웃으며 혹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오는 팀원들을 보고 긴장하고 말았다. 사물 앞에 다가가 천을 거둬내는 순간, 나는 움찔했다. 거울 안에 무표정한 내가 서 있었다. 곧 천천히 미소를 지어보이니 거울 안의 나도 따라 웃었다. 로드리고는 천속에 있던 그것이 아프리카에 갈 때 꼭 지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우린 다 같이 눈을 감고 그간 잊고 있었던 자신을 꺼내고 또 다독이는 시간을 가졌다.


오후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숲으로 갔다. 두 개의 나무 기둥에 여러 형태로 실이 얽혀있었다. 일종의 게임이었는데 우리팀원들은 그 실 틈을 통과해 반대편으로 넘어가야했다. 이는 누군가가 그 틈을 통과할 때 반대편에서 손을 이끌어주거나, 다리를 잡아줄 팀원들이 필요함을 의미했다. 하늘을 나는 슈퍼맨 자세로 무사히 서바이벌에 성공한 나는 곧 축하세례를 받았다. 일본친구 ‘센'이 노란 물감으로 내 얼굴에 신나게 낙서를 퍼부었다. 최후엔 팀원들 모두의 얼굴이 엉망이 되었지만, 우리는 한참동안 어깨동무를 한 채 까르르 웃기에 바빴다.


마지막 미션은 두 명씩 짝을 이뤄 천으로 눈을 가린 파트너를 아름다운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후에 우린 둘러앉아 어디로 파트너를 데려갔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파트너를 이뤘던 두 친구가 얘기 도중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얘기인 즉 그들이 간 장소는 학교 옆에 난 작은 도로로, 한 친구가 길목에 서서 “왼 쪽은 우리가 걸어온 길, 오른쪽은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라고 말했다는 것. 펀드레이징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던 두 사람은 그 길목에 서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순전히 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팀원들 저마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나도 눈물을 들킬까봐 한참동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게임을 마치고 팀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이 날 우리는 훈장처럼 얼굴에 묻은 낙서를 한참동안 지우지 않았다. 마치 한 팀이라는 것을 과시하듯이! 우린 2008년 11월팀으로 6개월 영국생활에 끝나면 다함께 아프리카로 가게 된다. 이는 내 스터디 포인트와 펀드레이징 머니가 다 채워진다 한들 마지막까지 팀원들의 펀드레이징을 도우며 함께 아프리카로 가야한다는 말, 이는 일종의 학교 규정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떠나라고 해도 난 가지 않겠다고. 우린 서로의 웃음도 보고 눈물도 맛본 가족 같은 한 팀이니까. 아프리카는 분명 차분히 우릴 기다려줄 것이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