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신화화(神話化) - 러시아 10월 혁명의 예, 그리고 21세기 금융지구화
⑮신화화(神話化) - 러시아 10월 혁명의 예, 그리고 21세기 금융지구화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5졸) 대한주택공사 연구원
  • 승인 2009.08.19 17:18
  • 호수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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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혁명은 자본주의사회가 무엇을 점검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공간 위의 사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세르게이 에이젠쉬테인은‘10월’(Octobre)이란 작품을 만들면서 러시아 혁명의 위대한 민중의지를 미장셴 형식으로 담아놓았다. 이것은 브로주아지에 대한 강력한 반발을 가지고 있는 일반민중들의 분노에 찬 저항이었으며, 위대한 승리였노라고 그 의미를 격상시켰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경제는 파탄 직전이었다. 물자 부족으로 인한 상점 약탈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생산기관들은 파업에 직면했고 짜르(tsar) 권력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드세졌다. 1917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볼세비키 세력은 정권 전복을 꾀하여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25만 병력 중 2만여 병력을 포섭하고 권력 장악을 시도하였다. 마침내 러시아의 총체적인 파국 상황에서 6천명 가량의 병력이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les sobiets-러시아 혁명 당시 형성된 노동자, 군대, 농민 대의원 평의회 조직체)의 이름을 내세우며, 봉기 작전에 돌입하였고 정부측 소수의 사망자를 제외하고는 희생자가 없는 무혈 봉기가 완료되었다. 이들은 이 사건을‘위대한 10월 혁명’(la Grande Revolution d'Octobre)이라고 치켜세웠다. 실제 이 사건은 아주 의미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러시아 국내 위기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미비했던 짜리즘은 이미 그 해 2월 이후로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었다. 당시 제정 러시아의 의회 설치를 통해 민주주의적 형식을 지향하기도 했다. 10월 사건을 이후로 보통선거를실시했을 당시 볼세비키는 사회혁명당에 비해 절반의 득표밖에 하지 못했다.(온건 사회주의의 승리) 그러나 중앙위원회의는 소비에트를 내세우며, 제헌의회를 해산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한 일반 민중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일렬의 사건에 대하여 볼세비키는 자신들을 승격화하기 시작했으며,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의 행위를 승리의 혁명으로 선전하였다.

 자본의 폐해와 급습을 예고하는 자본주의 비판이론에 따라 이러한 칭호는 온당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서구 사학자들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위대한 10월 혁명은 아직도 그 의미에 대한 첨예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개과정에서 재미있는 점 하나는 1917년 4월 테제로 불리는 레닌의 연설이다. 이 연설을 통해 토지의 국유화를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당연히 지주층 및 일부 농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볼세비키당은 이러한 반발을 염두하고 일시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한다. 이상적 신념의 선포일지라도 대중의 민심을 사로잡지 못할 때 그 주장은 철회의 위기를 맞는다. 한쪽에서는 레닌의 우상화를 위한 풍속화가 길거리에 뿌려졌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모조인가. 볼세비키 지도자들은 모든 소비에트를 포괄하는 대회를 통해 케렌스키가 수반으로 있는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레닌은 권력이 분산되는 것을 반대하였고 단독권력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볼세비키당과 사회 혁명당 등은 융합하지 않은 채 서로의 독자 노선 속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만들어갔다. 노동자들의 국가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대류 속에서 진행된 사건임에 틀림이 없으나 소비에트가 차지하는 여타 국가 내분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기도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무엇을 손수 점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공간 위의 사건이다. 이들은 일정부분 자신들을 미화시켰고 또 진심으로 그것을 믿었다.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체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노동 생산공정의 컨베이너 벨트화, 단순노동의 일관생산라인을 구축한 포드주의 역시 자본주의 진영이 한 때 추구하던 공급노선이었다. 이후 이러한 자본주의 양산 모델은 그 모순점에 의해 해체되었다. 현재 자본에 대한 경제적 재분배를 앞세우고 화폐적 안정을 추구하는 통화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자유무역의 논리 아래 새로운 축적체제를 지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모든 것이 비가시적인 공간 층위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2년 브라질 외채 규모가 증가하자 브라질은 외채이자 압박을 탈출하는 수단으로 원목 수출을 증대했으며, 광대한 원시림은 대규모로 벌목되어졌다. 서방세계는 이러한 사태의 문제를 브라질에게 떠넘겼다. 금융자본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전자 정보망을 타고 돌아다니며,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을 때 각각의 세계 생활 공간은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삶의 생활상에 위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금융지구화에 따른 빈곤의 확산은 전방위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어쩌면 또 다른 우상화를 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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