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 일주일간의 기차여행
⑬ 일주일간의 기차여행
  • 김유진 기자
  • 승인 2009.09.01 18:27
  • 호수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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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묶인 시골 기차역에서의 하룻밤

▲한적한 기차역의 모습
 

나에겐 근거 없는 믿음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 있거나 중요한 것을 잊고 살고 있을 때 신은 인간의 일상 속에 들어와 주위에 일어나는 새로운 사건들 속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거나 인생의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믿음이긴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삶의 해답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고민이 있을 때나 복잡한 생각을 덜고 싶을 때 여행을 떠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기차여행은 특별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여행하다보니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혼자 계획을 짜서 떠나는 여행이 그렇듯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변수가 많았다. 하루는 막차를 놓친데다 돈도 없고 다음날 첫차를 타야하는 상황이었던지라 기차역에서 하루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금방 12시가 되었고, 퇴근하려는 역무원 아저씨께 다음날 첫차로 떠나니 하룻밤만 역에 있는 걸 눈감아 주시면 안 되겠냐 애걸했다. 자기 몸집만한 배낭을 메고 피곤에 절은 꼬질꼬질한 여대생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저씨는 ‘잠자기엔 불편할 텐데…’ 라는 말을 남기며 숙박을 허락하셨다.

깜깜한 어둠속에서 수 백 마리의 모기에게 피를 헌납하며 앉아있기를 한 두 시간이 지났을까. 다리 펴고 누울 곳이라곤 수 천 명이 밟고 지나간 땅바닥밖에 없는 기차역에서 신문지 한 장 없이 밤을 지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피곤도 피곤이지만 그보다 참기 힘든 것은 지루함이었다. 지루함을 덜어보려 역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고 있는데 역 구석에 붙어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여러 개가 줄지어 있는 액자에는 좋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그중 글귀 하나가 마음에 닿았다.

‘저울위에 파리 한 마리 앉게 되면 가리키는 눈금은 변함이 없지만 그 무게는 거짓이 됩니다. 한 양동이 청정수에 한 점의 오물이 떨어지면 그 물은 폐수가 됩니다. 무심한 마음에 미워하는 마음이 얹히면 분노가 되고 가지고 싶은 마음이 얹히면 탐욕이 됩니다.<법주사 천룡스님>’

때론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작은 것들이 어떤 것의 본질을 거짓으로 만들 수도 있고 속성을 바꿔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바꿔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는 파리 같은 작은 결점을 덜어내면 나의 저울은 진짜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을 돌아보면서 작은 결점들을 걸러내는 작업은 자신의 모습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컴컴한 밤, 시골 기차역에서도 깨달음을 얻게 한다. 멋진 일이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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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j901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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