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조영갑입니다. 현재 상황 보고드립니다"
"인턴 조영갑입니다. 현재 상황 보고드립니다"
  • 김현지 기자
  • 승인 2009.09.03 13:08
  • 호수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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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턴 조영갑입니다.
     현재 상황 보고드립니다”

“인턴 조영갑입니다. 현재 상황 보고 드리겠습니다. 특별한 일 없고, 15분 전에 의료진 긴급하게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 꼴로 하게 되어있는 상황보고. 깐깐한 캡(사건사회부 서울시경 출입기자)의 면박이 되돌아온다. “야 임마! 의료진이 긴급하게 들어갔는데 그게 특별한 일 없는거야?” 잊고 지냈던 군대식 말투가 엉겁결에 튀어나온다. “아니…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같이 갔었던 간호사들이 별 일 없다고 하길래 말입니다…” 맞받는 말은 더욱 거세진다. “사람죽고 나서도 간호사 입만 쳐다보고 있을래?”


사건사회부로 배치되고 처음 떨어진 지시는 ‘뻗치기’였다. 문자 그대로 ‘뻗치고 기다리는 일’이다. 목표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무한정 뻗치고 있으면 된다. 단순 무식해 보이는 이 작업을 통해 기자들은 특종이라는 대어를 낚기도 한다. 우리가 대어를 낚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곳은 서울대병원. 불경하게도, 우리가 기다린 것은 한 인간의 ‘죽음’이었고, 그 인간은 전직 대통령인 노태우 씨였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이었던 노 전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하이에나. 병원 복도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기자들을 보며 떠오른 동물이었다.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든 기자들은 거대한 먹잇감의 ‘단말마’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로 먹이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기회를 보아 갈취해 버리는 초원의 포식자들. 그러나 결국 그 날의 뻗치기는 “노태우 감기 몸살 증세”라는 한 단 짜리 단신으로 처리되었으니, 하이에나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겨울의 하이에나는 추위에 강해야 산다. 겨울에도 ‘뻗칠’ 일은 널려 있기 때문이다. 내가 J일보에서 인턴기자를 했던 2008년 1, 2월은 유난히도 추웠다. 바싹 마른 공기에 비수같은 추위만이 가득했다. 비수가 어떤 이의 정신을 할퀴었던 걸까. 대사건이 터졌다. 방화로 인해 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全燒)된 것이다. 나는 평소처럼 편집국으로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캡의 지시대로 바로 숭례문으로 출근했다. 간헐적으로 있었던 뻗치기는 2월 11일을 기해 ‘롱 런(long run)’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인턴생활이 끝나기 전까지 이어졌던 ‘숭례문 뻗치기’는 많은 것을 남겼다. 소소하게 발굴했던 ‘특종’들은 차치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었다. 무료했던 사람들은 조간신문을 읽고 와서 방화사건에 대한 책임소재를 따지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서울시장하면서 숭례문을 개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웃기는 소리하지 마슈, 대통령(노무현)이 문화재 보호에 무심했던 탓이야.” 그들의 논쟁은 항상 드잡이로 끝이 나곤 했다. 이념 투쟁은 해방정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드잡이 꾼들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숭례문에 헌화하다가 포착됐던 세종대왕의 후손,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애석해 했던 일본인 관광객들, 불 탄 숭례문을 그려 수익금을 재건에 보태겠다는 유명 중국인 화가와 “언빌리버블(unbelievable)”을 연발하던 미국인 관광객, 그리고 게시판에 ‘지못미▶◀’를 채워 넣었던 수많은 고사리손들까지. 숭례문을 장작(?)삼아 벌어진 노변정담(爐邊情談). 나는 ‘숭례문 뻗치기’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민낯’을 보았다. 그 얼굴들은 기자가 되겠다는 내 열망을 한층 더 불타게 만들었다.

조영갑(언론영상·4)

 

김현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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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nhasu@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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