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내일로’ 기차 여행
⑭ ‘내일로’ 기차 여행
  • 권예은 기자
  • 승인 2009.09.08 17:09
  • 호수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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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내일로’ 기차 여행

한 장의 티켓이 준 여름날의 선물

 

 

▲정동진역에서 바라 본 일출.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고은 시인의 ‘낯선 곳’이라는 시 한 구절이 여행을 떠나던 당시 나의 마음을 말해준다. 설렘, 기대가 가득했던 스무 살의 여름은 싱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부모님의 울타리를 벗어나 생활한지 반 년, 갑작스레 주어진 삶의 자유를 만끽하기보다 이제는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스무 살의 무게가 버거웠다. ‘젊음’이라는 것이 주는 특유의 여유와 행복감 아래,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나를 맡겼던 것 같다. 그렇게 어영부영 여름 방학이 끝나갈 즈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멋진 제안이 지나가는 여름에 대한 나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바로 내일로(RAIL路) 기차 여행. 내일로 티켓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저렴한 가격에 일주일간 전 노선 자유석, 입석이 가능하다. 나로서는 흐지부지하게 지나갈 뻔했던 여름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에 고민할 것 없이 선배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8월 마지막 일주일간의 기차 여행은 시작됐다.

 

  여행 내내 어느 곳을 가든지 쉬운 것이 없었다. 길을 헤매는 것은 물론이고 여름날 숨 막히는 폭염 속에서 무작정 걸어야 하는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편하게 태워주던 아빠의 차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생 뒤에는 낙이 온다고, 힘들게 찾아간 만큼 여행지가 주는 감동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화려한 서울의 도심이 멋있을 때도 있었지만 역시 소박하지만 정겨운 산과 바다의 풍경에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철길이 만들어주는 낭만 속에서 일주일은 생각보다 금방 흘러갔다.

 

  매서운 바닷바람이 살결을 스치는 새벽, 어느새 마지막 여행지 정동진역에 발을 내딛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지난 일주일을 회상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찾아왔었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풀어가며 하고자 했던 목적을 이룬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생각해보니 이게 젊은 날의 인생이 아닌가 싶었다. 이리저리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우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바로 스무 살의 모습 말이다. 여행 첫째 날, 낯선 기차역 플랫폼에 내려 불안한 마음으로 기차역 문을 열고 나서던 첫걸음은 어디로 가야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지금 나의 발걸음과 같았다.

 

  고민에 대한 정답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젊음이라는 단어에 붙는 도전, 열정, 용기라는 수식어에 맞는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금방 흘러가버린 일주일이라는 시간처럼 젊음도 한 순간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소중한 젊음의 시간을 보내자는 다짐을 하며 스무 살의 절반을 마무리 지었다. 뿌옇게 깔린 구름을 헤치며 뻗어 나오는 한줄기 햇빛. 수평선 위로 떠오른 해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점점 밝아져 오는 하늘을 보면서 좀 더 밝은 내 미래도 꿈꿔봤다. 한 장의 티켓이 준 여름날 선물이 참 고맙다.

 

권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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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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