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나는 누구인가
(26) 나는 누구인가
  • 이종우(강원대,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강사
  • 승인 2009.09.10 17:16
  • 호수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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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 가장 일반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물음 중 하나로 ‘나는 누구인가’가 있습니다. 옛 동양 사상가들은 어떻게, 어떤 결론으로 ‘존재’에 대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현답]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는 개인주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서양철학에서 나오는 중심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동양철학에서도 불교철학에서는 그것이 중요하게 나타납니다. 반면에 제자백가로 통칭되고 있는 중국철학에서는 그것 보다 공동체에 관한  것이 중심문제로 등장합니다. 물론 중국철학에서도 그 문제를 추론할 수는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기초경전인 아함경을 중심으로 한 근본불교에서 삼법인 중에서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법에는 내가 없다’라는 의미인데 ‘법’은 현대적인 의미로서 번역하면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내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때 ‘존재’란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도 포함됩니다. ‘내가 없다’는 의미는 ‘고정불변의 실체인 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존재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오온의 화합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온(五蘊)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서 색이란 물질, 수상행식이란 정신작용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러한 물질과 정신작용의 화합일 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습니다.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법무아에서 무아는 훗날 대승불교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용수에 의하여 무자성공(無自性空) 즉 독자성이 없는 공이라는 의미입니다. 부파불교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컸던 ‘모든 존재가 있다[유(有)]’라고 주장하는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비판하기 위하여 무아를 무자성공이라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설일체유부를 비롯한 부파불교를 소승, 용수를 대승불교라고 일컫게 되었습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소유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소유권분쟁이 생길 것입니다. 반면에 모든 존재란 독자성이 없고 나 역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고 한다면 소유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이 때문에 무소유란 윤리가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제법무아로 해석한다면 나는 물질 정신의 임시적 화합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없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나의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없으므로 나는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성형수술까지 한다면 더욱더 그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형수술을 한 후 상대방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의 생각도 바뀌게 됩니다. 이 때문에 나의 얼굴만 바뀔 뿐만아니라 정신까지도 바뀝니다. 그렇게 되면 나의 실체가 무엇인지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년전에 히트했던 ‘미녀는 괴로워’라는 영화에서 그것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뚱뚱한 추녀 한나가 성형수술하여 완벽한 S라인의 미녀 제니로 이름까지 바꿔 나타나는데 상대방의 시선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그녀는 누구인가’ 또는 그녀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면 대답하기 곤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뚱뚱한 추녀에서 아름다운 몸매의 미녀로 바뀌었고 그 정신까지도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나이가 들면 몸도 늙고 생각도 변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고정불변의 실체라고 말할 수 있는 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임시적으로 현존하는 나에 대하여 답변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도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 실체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근본불교의 핵심철학인 제법무아입니다. 또한 그것이 존재와 나에 대하여 답변을 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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