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윤내현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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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2.20 00:20
  • 호수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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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진정한 민족주의는 있었는가?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나 민족의 가치관 또는 민족 정체성의 중요성을 말하면 그를 민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때의 민족주의자는 경계해야 할 인물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민족주의는 배격되어야 할 이념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개 이태리의 파시즘이나 독일의 나찌즘 또는 일본의 군국주의 등을 민족주의의 산물로 본다. 그러니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이가 없다. 파시즘이나 나찌즘 또는 군국주의가 정상적인 민족주의가 가는 길일까. 설사 그것들이 민족주의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이 다른 나라에 있었다 하여 우리도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할 것인가. 그러한 논리가 과연 우리 민족에게도 적용되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민족주의를 실천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럴만한 준비가 되어 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민족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강요에 의한 것이던 스스로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던, 자신들의 문화나 가치관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며 이를 중심으로 강하게 뭉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민족이 그런 적이 있었는가.
불교문화가 전래된 이후 불교는 지배층의 문화로 우리 문화 위에 군림했고 조선시대에 이르면 중국의 유가 논리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그 밑에 불교문화 맨 밑에 우리 문화가 위치하여 우리 문화는 천시되었다. 그러니 우리 문화에 대해 긍지를 가질 수 없었고 민족의 정체성이 확립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외래문화인 유학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지배층과 우리 문화를 가지고 살아가는 서민층 사이에는 문화적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구심점이 없는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독립운동가나 학자들 사이에 민족주의를 강조하거나 논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 모두가 우리 문화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이에 공감하며 동참한 민족주의가 실천된 적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럴만한 준비가 된 적도 없었다. 외세의 침략, 특히 일제의 침략에 항거했던 광복전쟁을 한국적 민족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민족문화에 대한 긍지에서 나온 온 민족이 동참한 정상적인 민족주의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민족주의라는 명칭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진정한 민족주의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마저도 광복 후 친일세력과 친서방세력의 득세에 밀려 몰락하였다.
그러한 우리가 지금 이태리의 파시즘처럼, 독일의 나찌즘처럼, 일본의 군국주의처럼 될까봐서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우리 역사, 우리 문화, 우리 가치관을 말하거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은 마치 파시즘, 나찌즘, 군국주의를 옹호하는 역사의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몰아붙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태권도나 유도를 배운 사람 가운데 그것을 잘못 사용하는 사람을 보고 태권도나 유도를 배우면 깡패가 되니 배우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태권도나 유도를 익혀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면 정신도 건강해 질 것이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폭력도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니 얼마나 좋은가.
그 가운데 혹시 그것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기본 정신이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 때문에 태권도나 유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아서야 되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태권도나 유도 도장의 문 앞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그것을 배우면 깡패가 될 위험이 있으니 배워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요즈음에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오면서 우리문화나 우리가치관, 민족의 정체성 등의 중요성을 말하면 세계화시대에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 주장은 하루아침에 출현한 것이 아니다.
그간의 역사는 민족주의로부터 국제주의를 거쳐 세계화시대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시대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민족주의에 기초한 국제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할 처지가 아니라 민족주의의 기초 위에 국제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밀려드는 외래문화에 우리는 매몰되고 말 것이다.

<문과대학·인문학부·사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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