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 「그레샴의 法則(Thomas Gresham's)」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 「그레샴의 法則(Thomas Gresham's)」
  • 신용수
  • 승인 2009.09.17 13:31
  • 호수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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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우리 속담이다. 참견하지 말고 지켜나 보라는 우리의 정서가 녹아내린 철학이 내제하고 人間에 회자한 말이다. 「고려 말 두문동 72현」은 저물어가는 고려왕조를 지키려는 일흔 두 명의 선비가 지조를 고집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고려왕조를 그리워하면서 두문동에 은거한 사람들을 이름 하여 그렇게 부르고 있다. 조선조 「사육신」과 「생육신」또한 폐위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고 세조의 폐륜을 고발한 우리의 선비정신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 없기에 울분을 토하고 죽음의 결과를 감행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견디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인사가 만사라는 절대 권력자의 임명권이다. 작게는 한 가정에서 크게는 나랏일의 책무부여에 이르기까지 주관적 평가가 객관의 공감을 불러오지 못할 때 우리는 개탄하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더욱이 마키아벨리가 얘기한 권모나 술수가 개제되어 이루어진 경우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공분하고 허탈하며 증오까지 하기에 이른다. 금본위제가 채택되었던 시절 명목가치가 동일하고 소재가치가 서로 다른 금화와 은화가 유통되었을 때 소재가치가 큰 금화는 장롱 속에 깊게 깊게 감추어지고 사실상 유통된 주화는 은화뿐이었다. 이를 일컬어 그레샴의 법칙이라 한다.


「그레샴의 法則(Gresham's Law)」은 16세기 英國의 금융업자겸 사업가인 토머스 그레샴(Thomas Gresham)이 주장한 이론으로, 흔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는 말로 정의된다. 어느 한 사회에서 악화(소재가 나쁜 화폐)와 양화(예컨대 금화)가 동일한 가치를 갖고 함께 유통할 경우 악화만이 그 명목가치로 유통되고, 양화에는 그 소재가치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재보(財寶)로서 이용되거나 혹은 사람들이 가지고 내놓지 않아 유통에서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오늘날 주화 아닌 신용화폐가 중심을 이룬 시장에서 이 법칙은 역사적 사실의 뜻만 지닐 따름이지만 그 원리는 경제학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널리 적용되고 있다.
유통시장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빳빳한 신권지폐보다 너덜너덜한 구권을 먼저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보통주화보다 희소성이 크고 가치 있는 기념주화는 시중에 거의 유통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그레샴이 이 같은 이론을 제시할 때와는 시대적인 차이가 많다. 이 이론이 절대적인 것만 아니다. 현재의 화폐는 금?은화가 아닌 신용카드, 수표 등 신용화폐와 심지어 사이버머니가 점차 대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레샴의 법칙은 제품의 품질이 좋은 제품대신 저질 제품이 판을 치는 현상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쉬운 예로 정품 소프트웨어보다 복사 프로그램이 더 유통되거나, 혹은 기업임원이 똑똑한 후배대신 약간 바보스럽고 예스맨을 더 키워, 똑똑한 사원이 조직에서 밀려나는 사회적 분위기하며, 석유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친환경자동차의 출현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 또한 그 예외는 아니다.
작게는 한 가정에서부터 국가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러한 사회로 환치되었을 때 사마천이 「사기」에서 통탄한 천도(天道)는 是(옳은 것)인가 非(옳지 않은 것)를 두고 통곡하고, 고뇌와 갈등을 지켜보면 어쩌면 그레샴의 法則은 人類歷史와 더불어 영원 할 것인가 아니면 정도(正道)가 사도(邪道)를 벌한 사회가 도래할 것인가가 우리에게 주워진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신용수
신용수

 ysshin02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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