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경서정문의 편찬 기록 “경서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힘써 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경서정문의 편찬 기록 “경서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힘써 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
  • 김문식 교수
  • 승인 2009.09.18 17:00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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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경사서정문의 서경 부분.
이 책은 내가 춘저(春邸)에 있을 때 편찬한 것이다. 인쇄하던 날에 내가 직접 연기(緣起)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역경 2권, 서경 2권, 시경 2권, 대학 2권, 중용 1권, 논어 1권, 맹자 1권이다. 내가 강관(講官)에게 이르기를 “삼경 사서는 해석한 것이 많으니 전(傳) 소(疏) 전(箋) 해(解) 학(學) 주(註)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역경의 10익(翼)을 나누어 소속시키는 방법, 서경에 순전(舜典)은 없는데 요전(堯典)은 있고 우서(虞書)는 없는데 하서(夏書)는 있는 이유, 시경의 주남(周南) 소남(召南)을 남(南)이라 하지 않고 풍(風)이라 하는 이유에 대해 시끄럽게 논란을 벌였기 때문에 서적의 양도 많아졌다.

또한 중용 대학 논어 맹자에 대해서는 영락대전(永樂大全)에서 조금 필삭(筆削)한 뜻을 두었지만, 여러 학자들이 훈고한 것은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이 많다. 지금 정문(正文)만을 취해서 석경(石經)의 고문(古文)처럼 인쇄 배포하여 정현(鄭玄) 이전의 체재를 얻게 된다면, 경서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힘써 구하는데 일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모두 “그렇습니다.”라고 하니, 이에 궁료(宮僚)인 유의양(柳義養) 등에게 오자를 교감하고 잘못을 바로잡아 활자로 인쇄하게 했다. 1775년에 정조가 작성한 ‘경서정문의 연기(經書正文緣起)’라는 글인데, ‘경서정문’의 원래 제목은 ‘삼경사서정문(三經四書正文)’이다.

이 때 정조는 왕세손이면서 동궁이었는데, 본문에 나타나는 강관이나 궁료는 왕세자 교육기관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관리를 말한다. 정조는 당시에 널리 보급된 경서에는 원문과 함께 많은 주석이 실렸는데, 삼경의 주석은 원문의 뜻과 무관한 주변 문제에 대한 논란이 많았고, 사서의 주석은 명나라 영락대전에서 한 번 간추려 졌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주석이란 경서의 원문을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해설인데, 후대로 올수록 주석의 분량은 늘어나고 주석의 내용을 놓고 다시 논란을 벌이는 주석까지 생겼다. 따라서 방대한 주석을 따라 공부하다 보면 경서의 본래 뜻을 파악하기보다 주석의 논란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정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서의 원문만 뽑아서 정리한 교재의 편찬을 구상했다.

한나라의 희평석경(熹平石經)이나 당나라의 개성석경(開成石經)처럼 경서의 원문만 수록한 책을 인쇄하여 보급한다면, 경서의 연구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조는 자신의 구상을 시강원 관리들에게 말했고 관리들은 모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러자 정조는 유의양에게 원문의 오자를 꼼꼼히 교정하게 하고, 갑인자 계열의 금속활자인 임진자로 책을 인쇄하여 널리 보급했다.

조선의 학자들은 ‘사서오경대전’이라고 불리는 영락대전을 교재로 과거 시험을 준비했는데, 이는 송나라와 원나라 학자들의 주석을 위주로 했다. 따라서 영락대전으로 경서를 배우면, 송, 원대 학자들의 시각을 통해 경서를 이해했고, 다른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이에 정조는 주석을 완전히 삭제하여, 주석보다 경서의 원문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학자들이 특정한 학설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영락대전을 기준으로 할 때 삼경과 사서의 분량은 91권 51책이나 되어, 상당한 수준의 학자라도 한꺼번에 읽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정조가 간행한 경서정문은 총 11권 5책에 불과해 학습하기가 매우 쉬웠다.

정조가 다스리던 시대는 성리학의 발달이 정점에 이르고 청나라의 고증학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정조는 학자들에게 특정한 시각에 입각해 경서를 볼 것이 아니라 원문을 자유롭게 해석하며 유학의 본지를 찾을 것을 권했다.

김문식 교수
김문식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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