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이 무슨 한복이야’ 라는 편견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젊은 사람이 무슨 한복이야’ 라는 편견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 권예은 기자
  • 승인 2009.09.29 16:37
  • 호수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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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대한 고정관념 깨트리고 우리의 미를 세계에 알리려 노력

 

   현대 이전 평상복이었던 한복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특별한 옷이 됐다. 한복은 우리나라만의 색깔과 생활상이 담겨 있어 가깝지만 정작 제대로 입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 젊은 감각으로 우리의 전통 예술을 향유하면서 사회와 소통하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 씨를 만나 가깝지만 먼 예술로서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34)씨.

전통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새롭게 하면 얼마든지
현대적 감각을 살릴 수 있어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시작해 한국무용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무용수가 아닌 한복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대학 시절 무용을 하면서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한국무용을 했는데 당시 무대 의상으로 간단한 버선, 저고리, 바지 등을 만든 것이 첫걸음이었죠. 그러면서 ‘한국 무용하는 사람이 한복을 만든다면 무용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에 선생님들 옷도 몰래 몰래 만들어서 많이 입혀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너 한복 디자이너 해도 되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죠. 한복에 대해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군대를 다녀와서입니다. 제대 후 슬럼프가 찾아왔는데 밤마다 외롭고 힘들 때 바느질을 하며 한복에 빠져들었지요. 힘든 시기 한복이라는 것이 제 마음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차에 혜화동에 6,7평 정도 되는 작은 한복 가게를 냈어요. 1999년이었는데 그 때부터 무용을 하기 위해 무용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한복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서 한복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가게 하나 차려놓고 일을 시작한 것이 용감하고도 무식했지만 그게 본격적인 시발점이 됐습니다. 한복가게라고 크게 명칭하기보다 큰 부담 없이 좋아하는 장신구나 원단 등을 갖다 놓은 저만의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가게 일에 전념하다 보니 무용하는 시간은 점점 줄면서 만드는 옷은 두벌, 세벌 늘어가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한복 디자이너라는 일을 계속하게 됐어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로를 바꾼 것이 아니라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한복 디자이너라 하면 바느질하고 한복을 만드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보면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의 한복 디자이너는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바느질도 했지만 지금은 패션쇼도 해야 하고 나아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직접 바느질 할 시간적 여유는 없어요. 제가 가르쳐 놓은 기술자들에게 디자인을 해서 넘기고 그에 따라 옷이 나옵니다. 그리고 장신구는 보통 공방이나 작가 선생님들에게 맡겨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저는 외국에서 조그마한 알까지 가공해 와 국내에서 다시 디자인을 해요. 또 서양에서 입는 블라우스, 스커트 등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원단을 사서 한복에 접목시키는 일을 하고 있죠. 그리고 한복이라고 하면 특정 한복만 생각하시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안하는 게 없어요. 전반적인 평상복, 파티복, 패션쇼, 방송 의상, 무용 의상까지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저를 대개 한복 디자이너라고 하는데, 사실 한복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저희 집에 오시면 그 사람의 얼굴에 맞게끔 머리에서 발끝까지 세팅을 다 해줍니다. 한복은 입는 사람의 색깔이 가장 중요하죠.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이나 색상의 장단점에 따라 부족한 부분은 채워주고 넘치는 부분은 빼주면서, 피부 같은 옷을 만드는 것이 저의 첫 번째 역할입니다. 아름답고 예쁜 것보다는 항상 있어야하는 피부처럼 생활적인 것에 의미를 많이 두는 편입니다.

 

▲한복 디자이너 일을 한 지 어느새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보통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한복집을 한다든지, 부모님께서 유명한 포목점의 주인 정도가 되어야 제 나이에 한복 디자이너 일을 하는 게 맞겠죠. 저는 사실 어린 나이에 맨 땅에 헤딩을 한 격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해당되는 사항 없이 그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나이가 많으면 잘한다는 생각을 해요. 항상 연륜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세상의 벽’ 때문에 심적으로 시련이 많았습니다. ‘아니, 저 젊은 사람이 한복을 할 수 있을까’라는 시선을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저와는 매치가 안 됐던 거죠.
 

  저는 나이가 많아서 물론 잘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하고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를 통해서 어린 사람들은 할 수 없다는, 안 된다는 편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이, 또는 학생들이 꼭 전통이라는 게 나이 든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 시대에 맞는 전통을 이끌어 나갔으면 합니다.

 

▲드라마 <일지매> 의상 협찬을 계기로 세간의 큰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일을 할 때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방송은 시청률 때문에 험난한 모험을 하지 않습니다. 정확성을 가지고 검증된 사람만을 쓰기에 젊은 사람, 신인 디자이너가 다가서기에는 조금 어려웠죠. 저 역시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이전에는 드라마 <황진이>, <왕과 나> 등에 장신구만 협찬을 했습니다. 이후 방송국 측이 저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일지매> 의상을 하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의상 디자이너라 하기에 너무 젊으니까 말이 많았죠. 어린 나이 탓에 관심도 많이 받았지만 대부분 제가 못 해낼 것이라는 생각이 많았을 겁니다.

  <일지매>를 하면서 퓨전이라는 이미지를 부탁받았는데, 사실 퓨전이라고 하면 어디에서 어디까지라는 영역이 없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한복으로서 조선시대 복식과 전통적인 문양은 그대로 두고 서구적인 원단이나 느낌을 집어넣었던 거예요. 요즘 사람들 퓨전이라고 하면 한복이 정말 드레스가 된 것처럼 아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아니고 전통의 바탕에서 서양적인 면을 첨가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드라마 <일지매>가 많은 인기를 얻으며 동시간대 방송 3사 시청률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됐죠. 젊은 사람이 한복 디자이너를 하는데 드라마에 의상 협찬을 했다는 내용으로 이슈화가 많이 됐고 여러 패션쇼도 참가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50주년 수교를 기념하는 행사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쇼에도 다녀오고,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패션쇼에도 참가했어요. 사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께서 “젊은 사람이 열심히 하면 한복계에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라며 저를 큰 자리에 많이 뽑아주셨어요. 한복을 세계무대에 올려 극찬을 받는 이영희 선생님의 큰 에너지를 보면서 저 역시 동양적인 것에 서양적인 것을 부각시켜 세계에 좀 더 알리고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려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요즘 세대의 사람들은 ‘한복은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만 입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옷인 한복을 젊은 사람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일본은 기모노나 유카타를 평소에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입어요. 젊은 사람들이 멋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우리도 한복을 입는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저고리만 보더라도 엄마들이 옛날에 입던 블라우스나 자켓의 원단으로 만들어 한복의 고지식한 느낌은 빼버리고 고전적인 문양은 살리면서 예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사극을 보면 한복이 참 화려하고 예쁜데, 그를 보면서 입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복을 입은 일반 사람들을 보면 너무 촌스럽다고들 하죠. 그 이유는 한복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쓰이는 원단과 재단 방식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대문시장에서 한복 원단을 사는 대신 양장에서 쓰는 원단을 한복에 응용하는 등 우리가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한복의 디자인을 바꾼다면 입을 일이 많아질 거예요. 한복을 입었을 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니, 한복인데 정말 예쁘네요, 영화배우 같아요’라는 말을 충분히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점차 한복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이로써 한복도 하나의 패션이 될 수 있어요. 한복은 나이 드신 분들만 입고 옛날 옷이라는 생각에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면서 한복 입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앞으로 한복이 발전하고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과 이루고 싶은 꿈을 듣고 싶습니다.

  한복에 대한 역사나 복식문화는 책이나 박물관에서 많이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이나 특별한 교육과정이 아니라면 한복을 배울만한 데는 없어요. 일반 대학의 의상학과라고 해도 양장에 대해 가르치지 한복에 대해서는 많이 가르치지 않습니다. 한복의 색상, 철학 등에 관한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복 학원만 하더라도 재단을 잘라서 한복을 만드는 것밖에 가르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나이를 더 먹고 강의를 하든지 무엇을 더 하게 된다면 새롭게 지향해 나갈 수 있는 한복의 이미지에 대해 수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지금 패션쇼를 많이 하는데, 조선시대와 삼국시대의 옷을 패션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이 봤을 때 입어보고 싶게끔 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한복을 대중화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외국 사람들이 한복이라 하면 특별하게 볼 수 있도록, 파티 때 입어보고 싶은 옷 중에 하나로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지금의 한류 문화가 있듯이 양장 디자이너라도 양장을 하면서 한복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동양적인 이미지가 많거든요. 근본적인 것을 바꾸는 것 보다 전통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디자인으로 현대적인 느낌을 줄 수 있어요. 이러한 이미지 작업을 많이 해서 한복이 더 사랑을 받는 하나의 패션적인 옷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진  : 이상만 기자 diplin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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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lver122@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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