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농사에 관한 책문 “낳는 자 하늘, 기르는 자 땅”
(29)농사에 관한 책문 “낳는 자 하늘, 기르는 자 땅”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09.29 17:21
  • 호수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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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는 자는 사람, 『농사에 관한 책문』직접 지어 모든 백성 부자 되기를 희망

 [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힘을 써서 땅의 재화를 기르는 것을 농사라고 한다. 농사란 백성의 생활을 후하게 하고 국가의 재용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다. 대저 농사의 도란 하늘의 때를 따르고, 땅의 이익을 나누며, 사람의 힘을 쓰는 것이므로, “낳는 자는 하늘이요, 기르는 자는 땅이며, 이루는 자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삼재(三才) 즉 하늘 땅 사람의 도가 모여진 다음에야 농사를 짓는 일에 빠짐이 없을 것이다. (중략)

  본래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말단의 기예를 억제하는 것은 왕정(王政)의 첫 번째 임무인 동시에 나 자신이 밤낮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매년 정월에는 농사를 권장하는 교서를 내리고, 첫 번째 신일(辛日)에 반드시 풍년을 비는 의식을 직접 거행한다. 궁궐의 후원에서 관예례(觀刈禮)를 하는 것은 농사를 돌아본다는 의미이고, 흉년에 환곡을 탕감하는 것은 곡식을 하사하는 뜻을 모방한 것이다. 백성을 이롭게 하고 민생을 후하게 하는 것에는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뜻은 부지런해도 다스림이 따라주지 않고 마음은 간절해도 효과는 아득한 것인가? 장마와 가뭄이 조절되지 않아 흉년이 거듭되고, 잡초가 우거진 밭을 경작하지 않아 묵은 땅이 점차 늘어난다. (중략)

   금년 경술년(1790)은 예로부터 큰 풍년이 든다는 해이다. 날씨가 순조로워 농사일이 정돈되어 가고 비 내리고 해 뜨는 것이 때에 어긋나지 않아 전국에서 풍성한 가을을 맞았다. 이는 바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맞이하고 다가오는 해를 일으킬 수 있는 일대의 기회이다. 어떻게 해야 집집마다 상농(上農)이 되고 해묵은 토지를 옥토가 되게 하며, 일 년 농사로 삼년을 먹고 삼년 농사로 구년을 먹어 한 세상을 풍성하고 화락한 땅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너희 사대부들은 평소에 말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니 반드시 가슴 속에 미리 강구해 둔 것이 있을 것이다. 각자 글에다 이를 모두 드러낸다면 내가 직접 살펴보도록 하겠다. 

 

▲1909년 순종 황제의 친경 사진.

 

  1790년에 정조가 작성한 「농사에 관한 책문[農策]」이라는 글이다. 책문(策問)이란 국왕이 신하들에게 정책적 방안을 질문하는 글을 말하는데, 신하들은 이에 대한 답변에 해당하는 대책(對策)을 작성해 제출했다. 이 책문은 정조가 당대의 인재로 양성하던 규장각의 초계문신과 성균관의 유생들에게 내려진 것인데, 초계문신과 유생들은 다수의 대책을 작성해 올렸다.

  정조는 한 해 농사의 결과에 따라 국가 경제의 규모가 결정되던 농경국가의 수장으로서 농업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조의 발언처럼 농사란 하늘의 때로 표현되는 기후 조건과 작물을 경작하기에 적합한 토질, 적시에 투입되는 노동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야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작업이었고, 농사가 잘 되어야 국가재정도 충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노력은 여러 방면으로 나타났는데,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농사를 권장하는 윤음이나 교서를 반포했고, 매년 첫 번째 신일(辛日)에는 사직단에 행차하여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祈穀祭)를 올렸다. 또한 친경(親耕)이라고 하여 국왕이 직접 밭갈이를 하는 시범을 보인 후 가을이 되면 벼를 수확하는 관예례(觀刈禮)란 의식을 거행했고, 흉년이 들면 이재민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탕감해주고 구호 물품들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정조가 파악하는 현실은 결코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흉년이 몇 년씩이고 거듭되는 데다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는 토지가 점점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정조는 각지의 토질에 적합한 종자의 종류, 세금의 종류와 장단점, 농업에 힘을 쏟았던 역대의 인물들, 중국 농서의 장단점에 대해 질문했고, 대책이 나오면 자신이 직접 읽어보겠다고 약속했다.

  정조는 모든 백성들이 부자가 되고, 농토는 옥토로 변하며, 1년 농사에 3년을 먹고 3년 농사에 9년을 먹을 정도로 재정이 튼실한 나라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조는 여러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려 했고 이를 실천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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