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일탈 - 대만 여행
17.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일탈 - 대만 여행
  • 이세일(국어국문 · 4)
  • 승인 2009.09.29 17:59
  • 호수 1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서툰 언어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움이었다

▲ 대만 야시장의 모습.

4학년 2학기, 누군가 몰지 않아도 곧 사회에 발을 내밀어야 할 나이였다. 발 붙일 곳이 있을까- 하는 문제는 무엇보다 커다란 것이었고, 지나간 나날을 돌아보자니 해온 것이 적었다. 기회가 된다면 휴학을 하고 준비를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그 동안 유럽에 가 다른 세상, 다른 시간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정리를 당한 건, 그런 내 계획이었다. 가족회의가 열렸고, 아버지와의 합의가 있었으며, 나는 한 발 물러서야 했다. 아쉬움은 컸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던 찰나에 매형에게 연락이 왔다. 대만 가지 않을래? 기회란 뜻하지 않게 오는 법이라는 생각을 한건 덜컥, 승낙을 한 후였다.


약 3시간 여 동안 섬과 같은 구름을 거쳐 타이베이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후끈한 열기였다. 9월 중순임에도 34℃를 웃도는 날씨, 거리에는 야자수가 서있고 햇빛 아래 서있으면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 비로소 대만이 한라에서 백두보다 먼 거리만큼 아래에 있음을 실감했다. 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도 열기는 존재한다. 28℃즈음의 후끈한 밤, 대만의 공기는 그렇게 짙었다.


다른 짙은 것을 꼽아보자면 음식이 있겠다. 그 뿌리는 중국인지라 대만에서 담백한 음식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푸른 채소에도 짙은 양념이 뿌려져 있으니, 대만 식당에서 차를 내놓는 이유를 혀가 먼저 알았다. 그러나 현지의 음식을 먹는 것도 다른 문화를 체험하는 일이거니와 애초에 이 여행의 본질은 식도락에 있었으니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런 와중에 그들의 몇몇 문화를 엿볼 수 있었는데, 우선 대만은 밤에 술 마시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그 밤을 책임지는 것은 각종 먹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한 야시장임을 알았다. 주택가를 벗어나면 쉽게 술집을 찾을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풍경인 것이다. 게다가 이 야시장도 새벽 1시 즈음이 되면 모두 닫기에 타이베이의 깊은 밤에는 대개 후끈한 열기만이 있을 뿐이다.


타이베이의 건물은 대체로 꽤나 낡아서 흡사 우리네의 을지로 1가 뒷골목을 연상케 한다. 질서정연하게 5층 정도로 세워진 그것들은, 이제는 낡은 것이 흡사 장개석을 닮은 듯도 했다. 모택동에게 패해 대만으로 옮겨온 후에도 버리지 않았던 본토 수복의 꿈, 그것이 처음의 뜻을 잃고 바랬듯, 그렇게 타이베이의 건물도 바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재개발하면 엄청나겠네. 문득 생각이 떠올랐고 스스로 씁쓸해져 걸음을 재촉했다.


4박 5일, 그저 잠시간의 일탈이었다. 대만을 알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 다만 느낀 대로 기억할 뿐이다. 서울을 닮은 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 안에서 어떠한 이국의 정취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다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서툰 언어로 목적지를 찾아가는 그 여정은 자체로 새로움이다. 설령 무계획적인 여정이라도 한걸음 한걸음이 유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그 유의미한 걸음을 위해 살고 있다. 나는 4학년 2학기, 대만으로의 일탈 뒤에 조금은 걸음을 재촉하는 중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