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전 '402'의 4는 '창조의 기쁨'을 가리켜 주는 방위표
졸업작품전 '402'의 4는 '창조의 기쁨'을 가리켜 주는 방위표
  • 도우리 기자
  • 승인 2009.09.30 10:41
  • 호수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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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엣지있게' 패션 용어만 쓰실 줄 알았던 패션디자인과 교수님의 발언 "궁딩이…"

TV나 잡지를 통해 보고 듣던 패션쇼. 그 마무리 작업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기자는 지난 21일 열린 우리 대학 패션제품디자인과 패션전공 4학년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 4 02’ 준비기간 중 3일과 쇼 당일에 걸쳐 체험해 봤다.

# 옷의 나라에서 바느질 하다
공대생인 기자는 익숙하지 않은 ‘패디과(패션제품디자인과)’의 체험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미술관으로 향했다. 졸업패션쇼인 ‘ 4 02’ 체험을 위해서다. ‘ 4 02’라는 타이틀을 설명해주는 첫 번째 힌트, 졸업작품전 준비실은 402호였다. 여하튼 처음 402호에 들어섰을 때, 작업 테이블·통로마다 쌓여 있는 천, 장신구, 마네킹과 작업 중인 옷들은 ‘천과 마네킹 세상’에 온 느낌을 주었다.

그런 광경이 조금씩 눈에 익을 때, 쪽가위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어 프로의 느낌이 물씬 나는 패디과 김소희 양이 기자를 불렀다. 그런데 학창 시절 실과 수업에서 ‘바지 만들기’실습을 하며 기자의 적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바느질을 시키는 게 아닌가. ‘패션디자인과 졸업작품’이라는 대상을 바느질에는 젬병인 존재가 건드린다는 게 송구했다. 김 양에게 부담스럽다는 의사를 비쳤으나 ‘2학년도 하기 힘들어 한다’며 버튼홀 스티치(실의 풀림을 막기 위한 바느질)를 시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역시 버튼홀 스티치는 무리였다.

이후 맡은 일은 패디과 황보은영 양의 옷에 ‘깃털달기’였다. 황보 양은 ‘그냥 앞부분처럼 이렇게 풍성한 느낌으로 달면 되요’라고 했지만, 미적 감각이 부족한 기자는 ‘그냥 이렇게 풍성한 느낌’을 말 그대로 ‘그냥 풍성한 느낌’으로밖에 표현 해 내지 못할 거란 불안함이 일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았다. 깃털이 너무 예뻐서, 황보 양에게 부탁해 깃털 몇 개를 얻었다.

 

# 패디과 만의 무언가
심리학과에서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려 하고, 기자의 전공인 화학공학에서는 나프탈렌의 냄새를 맡으며 구조식을 떠올리는 것처럼 ‘패션 디자인과 만의 무언가’가 기자에게 포착됐다.

올해 패디과 4학년 학생 17명 중 남학생은 3명이다. 이들도 당연히 옷을 ‘만든다’. 남학생들이 하루 종일 재단, 바느질을 하는 것이 여기에선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쇼 이틀 전 토요일에는 정진숙 교수님이 학생들의 옷을 봐주었다. 옷을 보는 중간에 “궁딩이가 잘 맞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패션 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패션 업계 사람들은 사소한 표현에도 ‘엣지있게(?)’ 영어를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hip’도, ‘엉덩이’도 아니고 너무나도 구수한 ‘궁딩이’라니! 역시 언어는 의미만 잘 통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손놀림이 분주했던 쇼 준비 마지막 밤, 그때 들은 두 학생의 대화는 섬뜩했다. 강수정 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 속에 옷핀이 들어 있었다고 하자, 김유미 양이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다른 선배의 경험도 곁들였다. 옷핀이 옷 속에 돌아다니는데 모르고 다니다니! 패디과 만의 색깔이 물씬 묻어나는 에피소드였다.

# 바느질은 이제 내 적성?!
둘째 날, 강수정 양이 부탁한 ‘세발 뜨기(안단을 고정하는 바느질)’를 했다. 수정 학생의 반응, “우리 과 2학년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아요!” 패디과 학생에게 이런 칭찬을 받다니! 영광, 또 영광! 이후에 바느질을 할 때는 ‘실수만 하지 말자’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갖고 임했다. 바느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 드디어 작업의 결실! 쇼 ‘4  02’
처음 쇼 홀에 들어섰을 땐, 비록 리허설이었지만 첫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모델이 무대에서 워킹하는 것을 직접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멋진 의상을 입은 모델의 걸음 하나하나는 기자에게 당장 패션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게 만들었다. 모델이 입은 옷들 중에는 기자가 손질한 옷도 종종 눈에 띄었다. 멋진 쇼에 기자가 적게나마 일조했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했다. 다만 ‘창조’로 일조한 뿌듯함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나는 누구나 할 만한 바느질을 했을 뿐이지만, 졸업작품전을 준비한 패디과 학생들은 직접 옷을 디자인하고, 고민하고, 작업하는 ‘창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델들이 그들의 옷을 입고 워킹을 했을 때, 기자가 느낀 뿌듯함과는 비교되지 않는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고, 기자의 능력과는 먼 분야였기에 ‘체험’이 진정한 체험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 날 ‘창조의 기쁨’이라는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 ‘ 4 02’의 마지막 힌트
그런데, 왜 ‘4’자는 뒤집어졌을까?‘ 4  ’를 잘 보면 지도의 방위표다. 이것은 패디과 학생들의 미래를 가리키는 방향이자, 패션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기자에게도 ‘  4 02’는, 기자의 진로에 고려할 요소로 ‘창조의 기쁨’을 가리켜 준 방위표였다.

도우리 기자
도우리 기자

 wrdoh@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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