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체험기③ ‘패션쇼’와 ‘승마
생생체험기③ ‘패션쇼’와 ‘승마
  • 도우리 기자, 고민정 기자
  • 승인 2009.09.30 12:37
  • 호수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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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쇼와 승마는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분야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 안에 이를 접할 수 있는 전공이 있어 ‘생생체험’ 주제로 선정, 기자의 체험을 가졌다. <편집자주>

■ 예술조형대학 패션·제품디자인학과 패션전공 졸업패션쇼

졸업작품전 ‘   02’의    는
‘창조의 기쁨’을 가리켜 주는 방위표
‘엣지있게’ 패션용어만  
 쓰실 줄 았았던
 패션디자인과 교수님
 의 발언 “궁딩이…”



TV나 잡지를 통해 보고 듣던 패션쇼. 그 마무리 작업 공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기자는 지난 21일 열린 우리 대학 패션제품디자인과 패션전공 4학년 학생들의 졸업작품전 ‘   02’ 준비기간 중 3일과 쇼 당일에 걸쳐 체험해 봤다.

# 옷의 나라에서 바느질 하다
공대생인 기자는 익숙하지 않은 ‘패디과(패션제품디자인과)’의 체험을 위해 익숙하지 않은 미술관으로 향했다. 졸업패션쇼인 ‘  02’ 체험을 위해서다. ‘  02’라는 타이틀을 설명해주는 첫 번째 힌트, 졸업작품전 준비실은 402호였다. 여하튼 처음 402호에 들어섰을 때, 작업 테이블·통로마다 쌓여 있는 천, 장신구, 마네킹과 작업 중인 옷들은 ‘천과 마네킹 세상’에 온 느낌을 주었다.
그런 광경이 조금씩 눈에 익을 때, 쪽가위를 목걸이처럼 걸고 있어 프로의 느낌이 물씬 나는 패디과 김소희 양이 기자를 불렀다. 그런데 학창 시절 실과 수업에서 ‘바지 만들기’실습을 하며 기자의 적성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바느질을 시키는 게 아닌가. ‘패션디자인과 졸업작품’이라는 대상을 바느질에는 젬병인 존재가 건드린다는 게 송구했다. 김 양에게 부담스럽다는 의사를 비쳤으나 ‘2학년도 하기 힘들어 한다’며 버튼홀 스티치(실의 풀림을 막기 위한 바느질)를 시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역시 버튼홀 스티치는 무리였다.
이후 맡은 일은 패디과 황보은영 양의 옷에 ‘깃털달기’였다. 황보 양은 ‘그냥 앞부분처럼 이렇게 풍성한 느낌으로 달면 되요’라고 했지만, 미적 감각이 부족한 기자는 ‘그냥 이렇게 풍성한 느낌’을 말 그대로 ‘그냥 풍성한 느낌’으로밖에 표현 해 내지 못할 거란 불안함이 일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달았다. 깃털이 너무 예뻐서, 황보 양에게 부탁해 깃털 몇 개를 얻었다.

# 패디과 만의 무언가
심리학과에서는 사람의 행동을 분석하려 하고, 기자의 전공인 화학공학에서는 나프탈렌의 냄새를 맡으며 구조식을 떠올리는 것처럼 ‘패션 디자인과 만의 무언가’가 기자에게 포착됐다.
올해 패디과 4학년 학생 17명 중 남학생은 3명이다. 이들도 당연히 옷을 ‘만든다’. 남학생들이 하루 종일 재단, 바느질을 하는 것이 여기에선 전혀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쇼 이틀 전 토요일에는 정진숙 교수님이 학생들의 옷을 봐주었다. 옷을 보는 중간에 “궁딩이가 잘 맞지 않아…”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기자는 패션 관련 드라마를 보면서 패션 업계 사람들은 사소한 표현에도 ‘엣지있게(?)’ 영어를 쓰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hip’도, ‘엉덩이’도 아니고 너무나도 구수한 ‘궁딩이’라니! 역시 언어는 의미만 잘 통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손놀림이 분주했던 쇼 준비 마지막 밤, 그때 들은 두 학생의 대화는 섬뜩했다. 강수정 양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옷 속에 옷핀이 들어 있었다고 하자, 김유미 양이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다른 선배의 경험도 곁들였다. 옷핀이 옷 속에 돌아다니는데 모르고 다니다니! 패디과 만의 색깔이 물씬 묻어나는 에피소드였다.

# 바느질은 이제 내 적성?!
둘째 날, 강수정 양이 부탁한 ‘세발 뜨기(안단을 고정하는 바느질)’를 했다. 수정 학생의 반응, “우리 과 2학년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아요!” 패디과 학생에게 이런 칭찬을 받다니! 영광, 또 영광! 이후에 바느질을 할 때는 ‘실수만 하지 말자’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갖고 임했다. 바느질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 준 소중한 칭찬이었다.

# 드디어 작업의 결실! 쇼 ‘   02’
처음 쇼 홀에 들어섰을 땐, 비록 리허설이었지만 첫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모델이 무대에서 워킹하는 것을 직접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멋진 의상을 입은 모델의 걸음 하나하나는 기자에게 당장 패션의 세계에 빠져들고 싶게 만들었다. 모델이 입은 옷들 중에는 기자가 손질한 옷도 종종 눈에 띄었다. 멋진 쇼에 기자가 적게나마 일조했다는 사실이 매우 뿌듯했다. 다만 ‘창조’로 일조한 뿌듯함까지는 느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웠다. 나는 누구나 할 만한 바느질을 했을 뿐이지만, 졸업작품전을 준비한 패디과 학생들은 직접 옷을 디자인하고, 고민하고, 작업하는 ‘창조’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델들이 그들의 옷을 입고 워킹을 했을 때, 기자가 느낀 뿌듯함과는 비교되지 않는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고, 기자의 능력과는 먼 분야였기에 ‘체험’이 진정한 체험이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이 날 ‘창조의 기쁨’이라는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 ‘   02’의 마지막 힌트
그런데, 왜 ‘4’자는 뒤집어졌을까?‘   ’를 잘 보면 지도의 방위표다. 이것은 패디과 학생들의 미래를 가리키는 방향이자, 패션에 대한 개개인의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기자에게도 ‘   02’는, 기자의 진로에 고려할 요소로 ‘창조의 기쁨’을 가리켜 준 방위표였다.

도우리 기자, 신해원·김남형 사진기자 dkdds@dankook.ac.kr


 ■ 체육대학 운동처방재활학과 ‘재활승마중급’ 수업

말을 움직이는 건 채찍이 아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순수한 아이들과
충성스런 말 ‘찬양이’,
그들과 함께 거닌
황금들녘

# 재활승마의 유래
‘장애인을 위한 승마(Riding for the Disabled)’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20C 초 두 명의 영국 여인들 이었다. 자신의 병원을 설립하고 의료 활동을 펼치던 그녀들은 병원에 말을 반입하고 그 말에 환자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들이 창설한 승마요법은 장애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전 세계 여러 곳에서 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도 승마요법을 재활치료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많은 장애우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 준비운동부터 승마, 하마까지
토요일 오전, 수업을 위해 찾아간 장소는 경기도 평택시의 한 목장이었다. 교수가 직접 운영하는 목장은 학생들 또는 일반인들을 위한 승마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초급과정부터 꾸준하게 실력을 쌓은 전공 학생들과 달리, 말이라곤 어렸을 적 회전목마를 탄 기억밖에 없는 기자는 교수가 설명하는 승마에 대한 기초상식부터 새겨들어야 했다. 승마는 살아있는 동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항상 위험이 따르는 운동이다. 또 승마 시에는 두려운 마음을 갖지 말고 즐겨야 한다.
그러나 말을 처음 타보는 기자로서는 아무리 두려운 마음을 떨쳐 보려 해도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몇 가지 준비운동을 마치고 도우미 학생의 도움을 받아 ‘블랙’이라는 조랑말 등에 올라타 승마장을 몇 바퀴 돌고 내려왔을 때, 기자는 도우미 학생에게 “얼마나 긴장을 했으면 얘가 이렇게 땀을 흘렸냐”는 소리를 들었다. 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한편으론 신기했다. 사람과 동물의 마음이 통할 수 있다니. 말은 매우 예민해서 기승자의 기분과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승마를 마친 후에는 말에게 ‘고마워’,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줘야 한단다. 교수의 설명을 잊지 않았던 기자는 블랙을 쓰다듬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 충직한 마(馬), 찬양이
재활승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의 성품이다. 시각장애인 옆에는 철저한 훈련을 받은 안내견이 있듯 재활승마에도 엄격하게 선정된 충직한 성품의 말을 사용한다. 말의 성품을 보는 이유는 어떤 공격을 받아도 흥분하지 않고 등 위에 태운 장애인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좋은 등급을 받은 찬양이는 두 시간 동안 함께 할 장애우들을 기다리며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 정신없는 만남 그리고 아쉬운 헤어짐
얼마 후,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승마장에 도착했다. 재활치료를 위해 정해진 날짜마다 이곳을 찾는다는 아이들은 승마장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안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말 주변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한껏 들떠있었다.
기자와 학생들은 교수의 지도에 따라 말과 아이들을 데리고 승마장을 나와 논밭을 지나고 인도 위를 거닐며 마을 한 바퀴를 돌았다. 황금색으로 물든 가을농촌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찬양이를 데리고 도로 옆을 지날 때에는 신호를 기다리던 운전자들이 창문을 내리고 신기한 듯 쳐다보기도 했다. 아이들은 순서를 정해 교대로 말에 타게 했는데 차례도 잘 지키고, 한 사람이 말에 타면 나머지는 계속 걸어야 했는데도 힘든 내색 않고 오히려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또 첫 만남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아이도 말 위에 올라타자 금세 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안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재활승마를 통해 정신지체장애 아이들은 약3m 눈높이의 흔들리는 말 위에서 승마를 하게 되므로 대담성과 균형 감각이 길러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관, 말을 끄는 리더, 양쪽에서 장애인을 잡아주는 보조자까지 약3~4명의 사람들과 지속적인 인관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자폐증이 있는 장애인들의 성격이 개조된다는 점이다. 승마를 마치고 돌아오자 기다리던 부모님들이 반갑게 아이들을 맞았다. 어느 부모는 아이가 소풍날을 기다리듯 재활승마치료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리고 한결 성격이 밝아지고 매우 활발해졌다고 한다. 첫 만남은 정신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기자와 학생들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잘 따랐다. 두 시간 동안의 보행에 힘들기도 했지만 말의 맑은 눈동자와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에 기자 또한 동화되는 듯 했다. 어느새 친해진 아이들과는 다음번 만남을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인사를 했다.

# 전공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학생들 
아이들이 떠난 후에도 수업은 계속되었다. 기자의 승마를 도와주고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장애우들의 재활운동을 돕던 학생들은 장비를 정리하고 승마장의 톱밥을 갈며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주말 시간까지 쪼개 수업을 듣는 그들은 실질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장애인승마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갖춰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수준급의 실력을 자랑하며 마장술과 장애물경기에서 선수로 활약하는 학생도 있었다. 정반대인 전공 수업을 참관하며 난생처음 말도 타보고 동물과의 소통을 경험한 기자는 훌륭한 꿈을 갖고 도전하는 다른 전공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뿌듯한 하루를 마쳤다.

고민정 기자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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