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인간의 감각을 넘어서
(30)인간의 감각을 넘어서
  • 이종우 (강원대,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강사
  • 승인 2009.10.14 10:32
  • 호수 12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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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인 ‘리(理)’와 유형인 ‘기(氣)’

[우문] ‘천사의 질문’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인간 세상에 천사가 나타났을 때, 천사에게 질문할 인간의 대표적 난제를 일컫습니다. ‘천사의 질문’중 하나로 ‘외계인은 존재할까?’가 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공자에게 귀신과 죽음 후의 일을 물었다고 합니다. 공자는 “아직 삶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귀신과 죽음 후의 일을 알려하느냐?”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한편 한의학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말하고, 플라톤의 철학에서도 보이지 않는 실체인 ‘이데아’를 얘기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감각적 한계를 넘어선 대상에 대한 동양 철학자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현답]  ‘외계인은 존재할까?’, 귀신, 사후세계, 기, 이데아 등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쉽게 인식하기 어려운 것들이죠. 물론 그것을 눈으로 보았다거나 다른 감각기관으로 느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송나라 때 신유학의 집대성자인 주희는 감각기관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무형, 그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을 유형이라 하고 전자는 리(理), 후자는 기(氣)라고 합니다. 현재 기를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무형이라고 말하지만 당시 그는 눈뿐만 아니라 눈 귀 코 입 피부로 느낄 수 없는 것을 무형이라 하고, 그 중 하나의 감각기관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을 유형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기를 감각기관으로서 인식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기를 감각기관으로서 인식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긴 합니다. 물론 아주 예민한 사람은 기를 감각기관으로써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당시 그러한 무형과 유형에 대한 의미는 오늘날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무형, 있는 것을 유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조금 다릅니다.

그는 무형인 리를 형이상자, 유형인 기를 형이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형이상자와 형이하자는 유가의 경전인 『주역』의 「계사전」에 나오는 용어입니다. 이 때문에 무형을 연구하는 학문을 형이상학, 유형을 연구하는 학문을 형이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궁극적인 존재 혹은 본질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는 서양철학의 메타피지카(metaphysica)를 형이상학이라고 현재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그에 입각한다면 양자의 의미는 다르죠.

 


무형인 리는 유형인 기가 운동하는 근원입니다. 천지자연은 기의 운동으로 인하여 생성소멸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기운동의 원인이 바로 리입니다. 리가 운동할 수 있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또는 리를 기의 운동법칙, 원리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밖에도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서양철학 특히 메타피지카(metaphysica)에서 중요시 되는 것이 신이지만 주희에게서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은 바로 무형인 리입니다. 물론 그에게서도 서양에서 말하는 신을 상제(上帝)라고 하여 나타나기는 하지만 인격적인 존재로서 인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닙니다. 자연 그리고 그에 속해있는 인간을 생성케하는 것은 기이고 그것이 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리이며 그것은 바로 서양철학에서 말하는 신의 역할을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물론 신은 인격적이지만 리는 비인격적인 것이 다르죠.

신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릅니다. 조선시대 이황을 필두로 한 영남학파와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가 있는데 신에 대하여 19세기 논쟁이 벌어집니다. 당시 영남학파는 그것을 무형인 리라고 한 반면에 기호학파는 유형인 기라고 하였습니다. 전자는 신을 감각기관으로서 인식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 반면에 후자는 인식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양자 모두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무형인 리였다는 것이 공통점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전자는 리가 무형이지만 능동적으로 기를 주재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후자는 무형이기 때문에 전혀 능동적이지 않으므로 기의 뿌리역할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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