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TV를 끄자
추석, TV를 끄자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10.14 13:43
  • 호수 12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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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끄면 추억이 켜진다

냉정히 돌아보자. TV가 없었다면 이번 추석도 참 많은 사람들이 서먹함을 이겨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가정에서나 풍성한 추석 음식을 가운데 두고 나눈 대화 사이사이로 TV 소리가가 마치 배경음악인양 흘렀을 것이고, 도로에서 보낸 시간 역시 DMB가 함께 했을 것이다.

물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는 TV에서 나오는 소재를 주요 화두로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적당히 민감하지 않고, 적당히 다들 알고 있는 편안한 소재가 바로 TV를 통해 접하는 대중문화인 것이다. 올 추석은 <쉘 위 댄스>덕에 온 가족들이 웃었고, <달콤한 걸>덕에 흐뭇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TV에 감사해야 한다. 1970년대부터 급속도로 보급된 TV덕에 우리는 몇 가지 ‘자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보듯 TV가 안방을 차지하면서 어머니만의 공간이었던 안방에 남편과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생겼다. 온 가족이 드라마 한 편을 보기 위해 자유롭게 한데 모일 수 있었으며, ‘안방극장’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단란한 분위기도 얻었다. 근엄한 아버지도, 잔소리 많은 어머니도 안방극장에서는 단란했다. 물론 각자의 시선은 수상기를 향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거실과 안방에 TV가 놓이고 DMB 핸드폰이 생기면서 그나마 TV덕에 단란하던 분위기도 사라졌다. 그래서 별로 모일 일도, 대화할 일도 없는 가족들이 추석에 한데 모여 느끼는 서먹함은 어쩌면 당연하다. 가족 내에서도 할 말이 없는데 친척들끼리는 오죽할까. 그러니 어쩔 수 없이 TV에 둘러앉아 마음에 없는 대화를 나누며 변죽을 울리는 안부만 묻게 된다.

다시 한 번 냉정히, 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이번 추석을 돌아보자. 오랜만에 만난 혈육 간 할 말이 그렇게 없었을까? TV가 전하는 세상 -답답한 정치, 어려운 경제 문제, 그나마 가벼운 걸 그룹 이슈 등-을 빼면 공통 소재가 없는 걸까? 따지고 보면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사촌들과의 기억도 있고,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있다.

조금 어색하더라도 TV를 끄고 서로의 추억을 켜 보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새로운 화제가 생길 것이다. 추석날 TV가 전하는 세상보다 소중한 것은 우리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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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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