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숨결, 진천 농다리
천년의 숨결, 진천 농다리
  • 이민호 기자
  • 승인 2009.10.14 17:38
  • 호수 126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년의 풍파를 이겨낸 농다리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때로는 사랑과 사랑을 잇고 있다

▲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17번째로 뽑기도 한 진천 농다리. 독특한 다리 모양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살았을 때는 진천에 살 것이요, 죽어서는 용인에 묻힐 것’이라는 뜻을 가진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은 잘 알려진 속담이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충청북도 진천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이 곳 진천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문백면 구곡리 앞을 흐르는 세금천에 놓인 ‘진천농교(籠橋)’. ‘농다리’라는 이름이 더욱 정겹다.


중부고속도로 상행선 진천 부근에서, 혹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장희빈’, ‘모래시계’ 등 드라마 속 장면에서 이 돌다리를 한번쯤 봤을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풍경이기에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 다리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고려 때 만들어져 천년의 풍상을 버텨낸 다리로서 지금은 충청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농다리는 매우 특이하게 생겼다. 선암사 입구의 승선교처럼 무지개 모양도 아니고, 고막천 석교처럼 편편하지도 않다. 상판보다 쌓아 올린 교각이 넓어 튀어나온 교각의 양끝이 마치 지네의 발처럼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면 자색(紫色)을 띤 돌빛이나 구불구불한 모양새가 마치 거대한 지네가 몸을 슬쩍 퉁기며 강을 건너는 듯 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농다리의 이름은 지네 모양을 닮았다 하여 지네 농자를 써서 농다리라고 불렸다고 한다.


구곡리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다리 축조에 관한 전설은 이렇다. 고려 때 무신 임연이 세수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개울에서 젊은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부친상을 당해 가는 길인데 다리가 없어서 그렇다고 했다. 임연은 당장 용마를 타고 돌을 날라다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때 임연이 놓은 다리가 바로 농다리다. 또 농다리에 얽힌 재밌는 얘기도 있다. 아낙이 다리를 건너면 아들을 낳고, 노인이 건너면 무병장수하는 등 건너는 이에게 소원성취와 복을 전하는 다리라는 것. 이와 함께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다리가 목 놓아 운다는 것이다. 갑오농민전쟁 때와 국권침탈, 그리고 한국전쟁 때 돌다리가 울었다는 얘기가 내려온다. 아울러 전쟁과 같은 큰 일이 있을 때 소리를 내거나 상판이 떠올라 재앙을 알린 영험한 다리로 알려져 있다.


천천히 농다리 위를 걷고 있는 동안 이 다리 곳곳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상흔을 보았다. 하지만 농다리는 결국 지속보다는 단절이, 보존보다는 파괴가 우선시 되어 온 한국의 현대사에서 세월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내며 삶과 문화를 이어왔다. 그래서 세월 강을 건너온 농다리 위를 걸으면 슬픈 얼굴을 한 수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농다리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때로는 사랑과 사랑을 잇고 있으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이민호 기자
이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sksdlal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