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정조의 독서기
(31) 정조의 독서기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11.04 15:54
  • 호수 1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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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본 배포, 당대의 학문을 일으키고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다

[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선본 배포, 당대의 학문을 일으키고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다
국왕이 되어서도 삼여 때마다 독서에 열중


  나는 삼여(三餘) 때마다 한 질의 책 읽기를 매년 상례로 삼았고, 손수 선별한 책을 반드시 인쇄하여 내외에 배포했는데, 이는 문풍(文風)을 진흥시키고 습속을 바로잡으려는 고심에서였다. 책이 배포되면 직접 먼저 송습(誦習)하였는데, 이것은 한 세상의 표준이 되었다.

  을묘년(1795)에 『주서백선(朱書百選)』을 새로 인쇄했는데, 10월 28일에 읽기 시작하여 12월 16일에 완독하였으니 49일이다. 병진년(1796)에 『오경백편(五經百編)』을 새로 인쇄했는데, 11월 11일에 읽기 시작하여 12월 8일에 완독하였으니 28일이다. 정사년(1797)에 『사기영선(史記英選)』을 새로 인쇄했는데, 10월 8일에 읽기 시작하여 12월 27일에 완독하였으니 80일이다. 무오년(1798)에 『팔자백선(八子百選)』을 새로 인쇄했는데, 11월 1일에 읽기 시작하여 12월 15일에 완독하였으니 45일이다. 기미년(1790)에 『춘추(春秋)』를 새로 인쇄했는데, 그전에 여러 번 읽었고, 11월 18일에 다시 읽기 사작해 12월 8일에 완독하였으니 20일이다. 『좌씨전』은 역사서이므로 주자가 말한 천리마다 한번 굴곡이 있을 정도로 잘 통하기는 하지만 당상(堂上)으로 끌어올리기에는 분명 유감이 있다. 따라서 경(經)을 먼저하고 전(傳)을 뒤로 하니 나에게는 내 마음의 『춘추』가 따로 있는 것이다. 이제 내가 인쇄하고 내가 읽는 일은 이미 끝마쳤다. 내년에 새로 인쇄를 하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지만 내 정력을 생각하니 예전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옛날 어렸을 때 책 한질을 완독하면 자궁(慈宮)께서 그때마다 약간의 음식을 마련해 기쁨을 표하셨으니, 민간에서 ‘책씻이(冊施時)의 예(禮)’라 하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가 맏아들 수지(受之)를 여동래(呂東萊)에게 배우라고 보내면서, 일각차(一角茶) 30근을 보낸 것도 바로 이런 뜻이었다. ‘오늘에도 일이 있으면 반드시 알리는 의리’를 따라 자궁에게 『춘추』를 완독한 일을 말씀드렸더니, 자궁께서 소자를 어릴 때처럼 보시고 여염집처럼 술과 떡을 간략하게 마련해 주시므로, 책을 감인(監印)하거나 현독(懸讀)한 사람들과 함께 먹었다. 채색 옷을 입고 어린애처럼 장난한 것은 노래자(老萊子)가 어머니를 기쁘게 한 것이고, 기쁨이 휘장에 넘친 것은 주자께서 어머니께 축수하던 것이다. 자궁께 한량없는 축수를 드리고, 이 시를 써서 여러 사람에게 화답할 것을 요구한다.

▲정조가 친필로 작성한 독서기.

  정조가 1799년에 작성한 독서기의 제목인데, 원 제목은 ‘춘추를 완독하던 날 자궁께서 음식을 마련하여 기쁨을 표하므로 읊어서 신하들에게 보이다(春秋完讀日, 慈宮設饌識喜,  示諸臣)’이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한 정조는 국왕이 되어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는 매년 삼여(三餘)가 되면 한 질의 책을 읽었는데, 삼여란 독서하기에 적당한 세 가지 여가로서 겨울철, 밤, 비가 올 때를 말한다. 또한 책에서 긴요한 부분을 간추린 선본(選本)을 인쇄하여 널리 배포했는데, 이는 당대의 학문을 일으키고 잘못된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정조는 1795년에 주서백선을 인쇄한 것에서 시작하여 오경백편, 사기영선, 팔자백선 같은 선본을 배포했는데, 이는 주자의 문집, 오경(五經), 사기(史記), 당송 팔대가의 문장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간추린 책이었다. 정조는 매년 연말이 되면 자신이 보급한 책을 제일 먼저 읽는 것으로 소일했는데 그 기간은 20일에서 80일 정도였다.

  1799년에 정조는 춘추를 읽었는데 책읽기가 끝나자 모친인 혜경궁 홍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혜경궁은 정조가 어려서 책을 뗄 때마다 책씻이를 해주었듯이 술과 떡을 만들어 주었고, 정조는 이 음식을 책의 인쇄를 감독하거나 토를 단 신하들과 나눠 먹었다. 정조는 모친의 변함없는 보살핌에 감사하며 장수를 기원하는 것으로 글을 맺었다.

  정조의 독서기에는 국왕이 되어서도 독서에 열중하는 아들과 이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모친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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