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
(19)경북 안동, '이육사 문학관'
  • 고민정 기자
  • 승인 2009.11.06 16:11
  • 호수 12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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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시인 이육사의 고장, 안동

저항 시인 이육사의 고장, 안동
그 장엄한 풍광 속 느끼는 시의 절정

▲경북 안동의 원촌마을 입구에 있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비.

 이제는 수몰 지구가 된 안동의 원촌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흰 학이 무리 지어 앉아 있는 듯한 희고 둥근 돌들이 눈에 들어온다. 포도송이를 본 딴 흰 돌 위에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로 시작되는 우리 시대의 고전과 같은 시, <청포도>가 새겨진 시비가 놓여 있다.

시에 대해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청포도>의 첫 구절만은 자연스럽게 읊조릴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이육사 시인의 고향은 낙동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안동 도산이다. 무엇보다 이곳에 퇴계학파의 본산인 도산 서원이 존재한다는 것은 퇴계 이황의 14대 손인 그가 어떤 문화적 배경과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마을 입구를 거쳐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육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는 문학관 한 채가 서있다. 총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학관 1층에는 육사의 흉상과 육필원고, 독립운동 자료, 시집,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은 기획전시실과 영상실 그리고 낙동강이 굽이져 흐르는 원천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등을 갖추고 있다.

<광야>와 <절정>등과 같은 시를 시인의 육필을 통해 다시 음미해보면, 마치 죽음을 앞두고 남긴 유언 같은 장엄함을 느끼게 된다. 잘 알려진 시 외에도 후기에 창작된 시 중에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꽃>이라는 시 등 짧지만 섬광처럼 강렬한 생을 살다간 시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수많은 원고들을 감상할 수 있다.

문학관 외관에는 육사가 18세 될 때까지 자랐던 생가의 터가 있다. 생가는 현재 안동시내 다른 곳으로 옮겨져 쓸쓸한 빈자리만 남았다. 생가가 있던 터 앞뜰에는 꽃밭이 있었고 그 한편에 청포도가 심어져 있었다고 하니 “내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시구는 어쩌면 거기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해방 이전, 일제 암흑기는 침울하고도 치욕적인 시기였다.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붓을 꺾고 친일의 오명을 썼던 시절에 육사는 우리가 저항 시인이라는 관용구를 붙여 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하나이다. 그는 수시로 감옥을 들락거리면서 큰 고통과 시련을 당해야 했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 진 그 위에 서다/ 어디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는 <절정>의 시구나,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같은 <광야> 속 구절들은 그냥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책상 앞에 앉아 담배를 피워 가며 머리 쥐어 짜 풀어낸 미문들 하고는 격이 다르다.

육사의 장엄한 삶을 이해하고 그의 시가 어떻게 쓰였는가를 안다면 그의 시와 삶 앞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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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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