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삶의 의미
(32)삶의 의미
  • 이종우 (강원대, 한국교원대 윤리교육과 강사)
  • 승인 2009.11.10 18:47
  • 호수 1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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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상황에서 견딜 때 새로운 생(生)

[우문] 요새 자살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은 살 가치, 즉 ‘삶의 의미’를 따져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유의미성’에 관한 질문은 인간이 살다보면 한번쯤 직면하게 되어 인간이 허무에 빠지게 하기도, 삶의 의미를 찾게 하기도 합니다. 동양 사상가들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았는지 궁금합니다.
  
[현답]  삶이란 탄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면서도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기다리던 부모에게 아이의 탄생은 축하받을 일이지만 가난에 시달릴 때 식구하나가 더 늘어나는 것을 걱정할 경우 그의 탄생은 오열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굶주림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마을 청년이 낫으로 자신의 성기를 자르고 그 옆에서 부인의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던 정약용의 글에서 잘 나타나 있으며, 그로 인하여 그는 토지의 균등분배를 생각하여 정전제(井田制)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반드시 탄생의 기쁨과 슬픔이 가난으로 인한 것은 아닙니다. 간절히 원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탄생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태어날 때 슬펐지만 살면서 희망을 느낀다면 또한 기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죽고 싶은 생각도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자살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가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예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의 자살을 들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을 때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것은 좌절로 인하여 생기는 것이겠죠. 그것은 극단이며 한계상황에 직면한 것이므로 그러한 상태를 인간의 실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거짓된 생각과 행동을 하지 않고 진실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상의 기쁨 즉 감정의 극단상태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극한상황에 직면했을 때 죽지 않는다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을 생(生)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역(周易)은 유가의 경전이면서도 도가에서도 중요한 책으로 간주하는데 '낳고 또 낳는 것을 역(易)'(주역 계사전)이라고 하여 생을 변화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생이란 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정신도 그에 속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실체를 몸에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기존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 과거와 다른 경우 그것 또한 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시 완벽하게 바뀌어 새로운 생각이 생겼다면 재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완벽한 변화는 곧 생이며 재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몸도 마찬가지로 태아의 상태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그것은 생이며 탄생입니다.


그러한 주역에서 생이란 '천지의 큰 덕'(주역 계사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생을 천지의 큰 덕이라고 여겼다는 것은 그에 속하는 인간의 생 역시 큰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이의 탄생은 부모의 큰 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완전한 변화를 재생이라고 했을 때 그것 역시 큰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의 덕이라기보다 나 스스로의 덕입니다.

요즘은 성형수술을 통하여 자신의 몸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유행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과거와 다른 완전히 새로운 나로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역시 재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몸의 재생으로 인하여 생각도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다면 그 역시 정신의 재생일 것입니다. 그러한 재생 역시 덕이며 그것은 자신과 담당성형외과 의사의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생은 주역에 입각한다면 덕인 것입니다. 주역에서는 생을 부정 보다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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