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독립’ 사이의 회색지대부터 구체적으로 밝혀야
‘친일’과 ‘독립’ 사이의 회색지대부터 구체적으로 밝혀야
  • 윤명숙(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 승인 2009.11.17 13:32
  • 호수 1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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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담당했던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생긴 문제의식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흑백논리처럼 역사를 좌냐 우냐, 혹은 친일이냐 독립이냐 라는 단 두 가지의 스팩트럼으로만 바라보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점이었다. 다시 말해 흑과 백 사이의 다양하고 넓은 회색지대가 있으며 그 회색지대야말로 일제강점하의 식민지 조선을 구성하는 대부분이었을 것이고 이 회색지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식민지(혹은 일제강점기)’라는 것의 본질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최근 친일파인명사전 발간을 둘러싼 여러 보도를 접하면서 나는 나의 문제의식을 상당히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자칫 잘못하면 일제의 식민지배나 친일파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주장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친일문제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접한 기사는 이러한 나의 문제의식을 더 깊이 천착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다만, 나의 문제의식이 아직은 덜 익은 술처럼 부글거리기만 할 뿐이어서, 오늘은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에서 머물고자 한다. 2008년 4월29일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하자 ‘명예훼손’이라거나 ‘친일파의 낙인(烙印)’, ‘역사적 심판에 맡겨야 한다’거나 ‘학계의 체계적이고 실증적인 연구에 맡겨야 한다’는 등 그 후손과 기념사업회 등의 비난이 쇄도하였다.

이명박 대통령도 서정주 시인의 생가를 친일행적 때문에 유족이 매각하였는데 서울시장 시절에 사들여서 복원한 적이 있다는 에피소드를 사례로 들면서, “친일 문제는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 한다”고 명단 발표를 둘러싼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로부터 1년 반 정도가 지난 11월8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가 4390명의 친일인명사전(이하 사전)을 발표하였다. 사전에는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지정돼 있는 장지연, 김성수 등 20여명의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조사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장지연과 박정희도 포함되어 논란의 불씨가 되었다.

국가보훈처의 ‘포상자 공적조서’에 따르면, 언론인 장지연은 1899~1909년까지의 “애국계몽운동”의 행적을 근거로 1962년 독립장을 받았고, 전 부통령 김성수(金性洙) 역시 1962년,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위하여 동아일보사를 창립하여 언론창달을 선구(先驅)”함과 “민족교육에 진력”하는 등의 ‘공적’을 근거로 대통령장을 수여받았다.

한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는 김성수의 조사결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어 보고서가 11월말에 발표될 예정인데 반해, 장지연은 유족들의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져서 조사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다고 한다(한겨레, ‘09.11.12.).

이렇게 찬반 논쟁의 초점이 되거나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다른 것은 결국 친일파란 무엇인가 라는 기준, 혹은 정의(개념)와 연관되어 있다. 위원회의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서는 조사대상자의 ‘행위’(20개 항목)에 중점을 두고 결정하였던 반면, 편찬위는 인물의 전체 이력을 중심으로 접근하였다(연합뉴스, ‘09.11.10). 이 때문에, 양자의 조사결과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한 편찬위에서 밝힌 친일파 기준에 따르면, 친일파는 위원회에서 규정한 반민족행위자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반민족행위자(‘민족반역자’)는 친일파의 한 부류에 해당한다(오마이뉴스, ‘08.4.29). 그렇다고 친일행위자가 곧장 ‘친일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서 친일파와 친일행위자의 개념을 구분하였다(연합뉴스, ‘09.11.10).

또한 편찬위의 “친일인사 선정 기준은 일제에 협력한 자발성과 적극성, 반복성, 지속성을 고려”했으며,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은 사회적·도덕적 책무와 영향력을 감안해 엄중히 평가”했다고 한다(국민일보, ’09.11.9). 지금껏 ‘친일파’라고 뭉뚱그려서 지칭하던 것 보다는 친일파, 친일행위, 반민족행위, 부일행위 등 예전보다는 개념을 구분하고자 하였으나 여전히 개념 정립과 함께 연구·조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장지연과 김성수처럼,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독립운동가와 친일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내려져서 혼란스러워보인다.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국가보훈처 공적조서에 기재된 장지연의 평가도 사실이고 편찬위에서 평가한 장지연의 평가도 사실이다.

최근 한 연구발표에 따르면, 국가보훈처에서의 서훈 기준은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친일행적이 있으면 포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장지연과 김성수는 1962년에 결정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결정이 매우 정치적인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충분히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이명박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있게 봐야한다’는 발언이 어느 한 쪽의 행위가 다른 한 쪽의 행위를 상쇄시키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된다. 더욱이 ‘강압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거나 ‘민족을 위해 다른 좋은 일도 많이 했다’는 식으로, 행위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행위를 은폐하려는 주장이나 시도는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는 박정희의 후손 박지만이 친일인명사전 배포 금지 등을 요구한 제소가 기각된 만큼 한국사회의 역사인식이 성숙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폐지(1948.9.29 ~ 1949. 8. 22)된 지 60년 만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이야말로 ‘역사의 심판’의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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