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F라도 주세요”
“차라리 F라도 주세요”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11.17 13:33
  • 호수 1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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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학년 A 군은 ‘마케팅 유사 강좌’만 다섯 번 넘게 들었다. 강의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이 거의 같은 수업들에 ‘낚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제는 전공 시간에 토익이나 한자 공부를 할 수도 있다. 과제도 비슷해서 예전에 했던 ‘유사 과제’를 조금 수정해 제출한다. 전공, 참 쉽다고 생각한다.

#2. 문과대학 B 양은 수강 중인 전공과목의 잦은 휴강으로 관련 지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하시느라 자주 출장을 가셨기 때문이다. 처음 세 번까지는 좋았는데, 이제는 ‘대체 뭘 배웠나?’라는 생각이 든다. 휴강 자주 하는 과목, 세 시간 수업에 한 시간 반만 진행 되는 수업…. 들을 땐 좋은데, 왠지 찝찝하다.

대학 당국이 전공교육 강화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공 비율을 48.4%에서 71.5%로 상향조정하고, 교양은 현행 28.5%에서 20.8%로 낮춘다는 것이다. 실험실습 과목은 강사가 아닌 전임교원이 전담하고, 수업조교가 운용돼 실용적 강의가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한다.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강화해 취업률을 향상시키겠다는 의도다.

대학 당국이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면서 각 전공별로 특색에 맞는 다양한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다. 어떤 학과(부)는 전공 명칭을 바꿔 성격을 가다듬기도 하고, 취업률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목을 신설하기도 한다. 전공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이러한 대학 측의 움직임에 대해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지난 목요일 취업동아리 티핑포인트에서 만난 4학년 학생들은 “추상적이지 않은, 실제적 제도를 만들어 달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이 아닌, 정말 학생들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온 전공강화의 방안이 위와 같은 내용들이었다. 제발 똑같은 강의 좀 그만 듣게 해 줄 것, 수업 시간 좀 지켜줄 것. 어렵지도, 많지도 않은 상식적인 요구였다.

취업과 관련한 취재를 하면 학교 측에서 하는 대답은 늘 비슷하다. 정말 좋은 프로그램들을 마련해 놓았는데 학생들의 참여와 관심이 부족하다, 1학년 때부터 전공과 취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4학년 돼서 하니 너무 늦는다 등등.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학생들의 참여 의지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4학년 학생들이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그러한 약한 의지를 방관하는 ‘느슨한 교육 풍토’다. “수업 들을 땐 좋았는데, 취업 현장에 뛰어드니 원망스럽다”는 것이다. 전공교육 강화가 취업률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한 방안은 학생들의 원망 속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어떻게 제도로 만들 것인가’는 대학 측의 몫이다. “구박을 해 주셔도 좋고, F를 주셔도 좋다. 수업 분위기만 제대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구직난을 겪고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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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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