覆水不返盆
覆水不返盆
  • 조상우(교양학부)교수
  • 승인 2009.11.19 11:28
  • 호수 1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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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覆水不返盆
;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로 한 번 헤어진 부부는 다시 재결합 할 수 없다는 뜻이었지만, 일단 저지른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넓은 뜻으로 쓰임.

覆 : 엎어질 복, 水 : 물 수, 不 : 아닐 불, 返 : 돌아올 반, 盆 : 동이 분

11월 8일 ??친일인명사전?? 출간 국민 보고대회가 김구선생 묘역에서 있었습니다. 이는 실로 감격스런 일입니다. 해방이후 일제강점에서 벗어나면서 36년간 일본에 친일을 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반민족특위가 구성되어 활동한 지 어언 60년 만에 이룬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반민족특위활동도 몇몇 사람들에 의해 그 활동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특위활동을 한 사람들이 오히려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친일에 가담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냈던 박은식의 <몽배금태조>에 보면 “매국노들의 죄목과 애국지사들의 선행에 대해서 ‘화복의 상벌권’을 행사해 달라”고 무치생이 금태조에게 부탁을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라를 찾겠다고 애를 다 쓰는데도 불구하고 친일을 한 매국노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면 불공평하다는 말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일제의 강압도 없습니다. 그런데 ??친일인명사전??은 그 시작부터 출간함에 있어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 사전 작업은 정부 주도하에 예산비 걱정 없이 편안히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책의 출간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관하였고, 심지어 정부에서는 이 연구소에 지원하는 예산마저 없앤 적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경제 한파까지 겹쳐 연구원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하여 사전작업의 앞날을 알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이 연구소에 힘을 실러 준 것이 바로 국민들이 낸 후원금입니다. 여기에 힘입어 ??친일인명사전??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힘겹게 출간을 한 책이 또 문제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몇몇 인사들의 후손과 추종자들이 해당인사가 친일을 하지 않았고, 그 행위에 대해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이미 기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일의 경중이 있다고는 하나 친일을 한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 번 저지른 행위는 다시 번복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사기(史記)??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 나오는데,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사냥을 갔다가 위수(渭水)에서 낚시하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보통 이상이었습니다. 이 노인이야말로 주나라를 일으켜 세울 큰 인물이라고 여겨 스승이 되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보통 강태공이라 알려진 태공망 여상입니다.


여상은 문왕의 청을 받아들여 문왕의 스승이 되었다가 후에 제(齊)나라의 제후에 봉해졌습니다. 사실 여상은 선팔십(先八十) 후팔십(後八十)을 산 인물입니다. 먼저 팔십 세까지는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끼니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할 정도였지만 날마다 집에서 책과 씨름하면서 세월을 보내 살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여상의 부인 마씨는 결혼 초부터 시작된 생활고를 참다못해 그만 보따리를 싸고 친정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입신양명을 한 뒤 팔십 세에 생겼습니다. 마씨가 집을 나간 후 여상이 제나라의 제후에 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씨가 다시 돌아와 여상에게 “그때는 너무나도 가난하여 떠났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시 돌아 왔습니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있다가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아내에게 물 한 동이를 떠오게 하더니 그 물을 땅에 쏟은 다음 다시 그릇에 담아 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땅에 떨어진 물을 주어 담으려 하였으나 흙만 손에 잡힐 뿐이었습니다. 그제서야 태공망은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覆水不返盆) 한번 떠난 아내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이오”라고 말하였답니다. ‘복수불반분’은 원래 한번 헤어진 부부는 재결합할 수 없다는 뜻이며, 또한 어떤 일이든 한번 저지른 일은 다시 원상복구 할 수 없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한 일을 가지고 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친일을 하기 전에 항일과 국가 독립을 위해 일했으니 친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친일을 하고 이후에 빛난(?) 업적을 내었어도 그 전에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당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지금도 제대로 살고 있는 가정이 많지 않습니다. 심지어 유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박은식의 말처럼 ‘화복 상벌권’은 우리시대에 아예 존재하지 않은 듯 합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이제는 과거를 청산할 때가 되었고, 자신의 선조가 범한 과오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느 신문에 인터뷰를 한 분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친일인명사전??에서 확인한 후 내 예상한대로 썼다면서 조부의 과오를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만약이지만 앞으로 우리에게 시련이 또 온다면 누가 독립을 위해 일을 하겠습니까? 다시 한 번 독립유공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어느 분들이 계셨나 알아봅시다. 올해가 안중근의사 의거 100주년입니다. 이 분이 왜 의거를 했는지 다시 한 번 가슴으로 느껴봅시다.

조상우(교양학부)교수
조상우(교양학부)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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