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소리로 울고 있다
<책>『입 속의 검은 잎』 - 기형도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소리로 울고 있다
  • 이민호 기자
  • 승인 2009.11.19 15:34
  • 호수 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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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문화in 9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꿈을 갖고 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주인공 영호의 기억을 더듬는다. 불행하게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끝내 자살을 결심하고 달려오는 기차를 마주한 영호는 “나 돌아갈래”라고 절규를 남긴 채 세상을 등진다. 비단 영호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끔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것은 단순히 세속적으로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욕망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잃어버린 것에 대한 회한이고 프루스트가 말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바람이라고 볼 수 있다. 꿈을 갖고 있었던 시절로 회귀하는 것, 그것은 실현 불가능하지만 이런 소망과 상념을 갖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하지만 기형도 시인(1960~89)은 ‘미래가 나의 과거(오래된 書籍, p.25)’라고 말하며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망가진 꿈조차 꾸는 것을 포기한 그는 텅 빈 희망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빈방에 가둬놓는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빈집, p.81)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 왔구나(쥐불놀이―겨울版畵 5, p.118)’라며 사랑이라는 목발을 짚고 세상을 견뎌온 그는 결국 죽음만이 망가져 있지 않은 유일한 꿈이라고 여긴다. 다시 말해 그는 ‘나와 죽음은 서로를 지배하는 각자의 꿈이 되었다(포도밭 묘지 1, p.71)’고 탄식한다. 그의 시 어디에서도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염원이나 희망의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심지어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오래된 書籍, p. 26)’라며 희망의 싹마저 싹둑 잘라버린다. 이렇듯 기형도의 시에는 비극적인 세계관이 깊숙이 침윤되어 있고, 출구가 없다. 일찍이 문학평론가 김현은 그의 시 세계를 ‘그로테스크 현실주의’라고 명명했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소리로 울어야 한다(바람의 집―겨울 版畵 1, p.95).’ 기형도가 요절한지 20년이 지난 지금, 문학을 동경하고 시를 꿈꾸는 청년들뿐만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고 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그의 시집을 읽으면서 말이다. 기형도가 틀렸다.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고 펼쳐보고 있으며 또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추모행사를 열고 있으니.

이민호 기자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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