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송환기를 부르는 명령
(33)송환기를 부르는 명령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11.24 21:18
  • 호수 1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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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의 후손이자 당대의 산림 송환기를 부르다, 순조의 관례, 세자의 책봉례를 거행하기 위해

[김문식(사학) 교수의 21세기에 만나는 정조대왕 ]    


나는 경이 선뜻 마음을 돌리기를 날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데, 사관(史官)이 돌아와 보고하는 것을 들으니 나를 멀리하는 마음을 돌리지 못했음을 알겠다. 나는 경에게 힘써 권하여 응하게 하는데, 경은 내가 의례적으로 부르는 것이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인가?

새로 선발한 시강원과 익위사의 관료들이 나와서 숙배(肅拜)하고 직임에 나가지 않는 것은 경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하려고 해서이다. 이제 의식을 거행할 날은 점차 가까워져 경이 명령에 따르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으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경의 정성으로 본다면 수레를 준비하거나 신발을 찾을 겨를이 있겠는가?

더구나 내가 경을 부르는 예(禮)는 바로 선왕(先王)의 예이고, 경이 맡은 직임은 바로 선정(先正)이 맡았던 직임이다. 하늘이 정성스러운 말로 우리를 돕는 것은 우리 백성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내가 만약 선왕들이 나라를 이끈 업적을 이어받지 못하고, 경이 만약 옛 선조의 계책을 밝게 드러내지 못한다면, 조상들의 떳떳한 교훈을 잘 따랐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이 내가 몸소 경을 맞이하여 위나라 대부가 수레에 깃대를 꽂고 현자를 찾아가 만났던 옛 일을 강구하려고 한다. 먼저 참판을 보내어 이러한 뜻을 알리고 함께 올라오라고 하는 것이니, 조정에 들어올 날짜를 즉시 장계로 아뢰어라.

 

▲왕세자 책봉식을 그린 기록화.

정조가 1800년 1월 20일에 작성한 ‘겸찬선 송환기에게 하유하다(諭兼贊善宋煥箕)’라는 글이다. 겸찬선이란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시강원의 찬선을 겸직한다는 뜻인데, 정조는 새해 첫 날에 송환기를 찬선에 임명했다. 송환기(宋煥箕, 1728~1807)는 송시열의 5세손으로 그 문집인 『송자대전(宋子大全)』의 간행을 주도하면서 가학(家學)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정조는 이보다 앞서 1796년에도 송환기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를 원자 순조의 사부로 임명하고 강의를 시작하는 개강례(開講禮)에 나오라 한 것인데, 이는 현종 때 송시열이 원자 숙종의 사부가 된 것을 본받은 조치였다. 이번에는 순조의 관례(冠禮)와 세자 책봉례(冊封禮)를 거행하기 위해 송환기를 불렀다. 그러나 송환기가 움직이지 않자 정조는 이 명령을 내렸다.

윗글에서 정조는 애타게 기다리는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송환기에게 섭섭함을 표시했다. 그가 오지 않으므로 시강원과 익위사 관리들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순조가 관례와 책봉례를 거행할 날짜도 점차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정조는 송시열을 거론했다. 현종 때 송시열이 숙종의 사부가 되고 책봉식 때 빈료(賓僚)가 되었듯이, 송시열의 후손인 송환기는 이미 순조의 사부가 되었으므로 책봉식 때 빈료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정조는 자기는 선왕의 뜻을 따라 현종이 송시열에게 했던 조치를 하는데, 송환기는 어째서 선조인 송시열의 역할을 맡지 않느냐고 물었다. 송환기는 결국 정조의 명을 따라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2월 2일에 왕세자의 관례와 책봉례가 창경궁 집복헌(集福軒)에서 거행되었다. 이 날 송환기는 책봉례에서 국왕의 교명(敎命)을 받는 역할을 맡았고, 정조는 그 공로를 인정하여 종1품 판중추부사에 의정부 찬성을 더해 주었다. 재야에 있던 산림(山林)에게 파격적 우대를 한 셈이다.

그러나 송환기는 행사 다음날 도성을 떠나 바로 고향으로 돌아갔다. 왕세자 책봉례에 참석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정조는 떠나가는 송환기에게 조정으로 돌아올 것을 권유하는 명령을 여러 번 내렸고, 송환기가 머무는 곳마다 쌀과 고기, 땔감을 공급해 주어 그를 예우하게 했다.

송시열의 후손이자 당대의 산림이었던 송환기가 왕세자 책봉식에 참석한 것은 유학적 정통성을 중시하던 정조와 순조, 송환기에게 있어 명분이 분명한 일이었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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