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현장
89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 현장
  • 이민호 기자
  • 승인 2009.11.25 15:42
  • 호수 1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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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것은 내가 아니고 일본 정부다!" 라는 의식을 갖게 된 할머니들. 그녀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여러 가지 싸움들이 그녀들을 더욱 노쇠하게 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이후 벌써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할머니는 총 234분이었지만 지난 60여 년간의 말 못할 설움을 가슴에 안고 꽃다운 젊은 날의 생을 가슴에 묻은 채 지금까지 141분이 돌아가시고 이제 아흔 세 분만이 생존해 있다. 그간 할머니들은 결코 쉽게 아물지 않을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채 증언과 강연을 통해 우리에게 과거의 고통과 아픔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그러나 이제 많은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고통과 절망의 세월에 대해 자세한 증언을 할 수 없을 만큼 병들고 연로해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을 기록하여 우리 삶의 교훈으로 남겨놓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해방을 맞은지 64년이 되었으나 아직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해결되지 않았다.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92년에 시작한 수요집회가 오늘로써 벌써 892차가 되었으나 일본 정부와 대한민국 정부는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아쉽게도 그렇게 소원하던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도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신 할머니들이 한 분 두 분 늘고 있다. 이번 892차 정기수요집회에 참여하신 위안부할머니 세 분은 돌아가신 분들의 몫까지 다하겠다고 다짐한 듯 지치고 늙은 몸을 이끌고 나왔다. 일본 군국주의 침략전쟁의 깃발 아래 젊음을, 소녀 시절을 다 빼앗기고, 일본군의 성욕에 꿈이 뭉개져 버린 위안부할머니들. 험한 곳에서 겪었던 꽃다운 시절의 경험이 평생 할머니들을 짓밟고 있을 것이다. 그 슬픈 노래가 끝나는 날이 어서 오기를.

  892차 수요집회에는 많은 인원은 아니었으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한 도쿄 일본인 고등학생을 비롯하여 외국인 강사, 수녀 등이 참여했다. 특히 시위참여자중에 일본인이 많다는 사실이 눈에 띄었다. 일본인들의 관심도가 높다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으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해가는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46년이 걸려서야 어렵게 밝힌 위안부할머니들의 함성을 또 다시 묻어버린다면 더 많은 세월이 걸리거나, 아니면 영원이 해결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주최 측 연설 후에, 중앙대 사회학과와 경원대 교지편집부 학생 각각 두 명이 자유발언시간을 가졌다. 경원대 교지편집부 신입생은 17년 동안 열린 수요집회에 대해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할머니들의 아픔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이어 6년 전에도 수요집회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는 일본할머니의 자유발언이 있었다. 그녀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더욱 깊어진 주름살을 마주하고는 발언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편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위안부할머니들에 대한 호칭문제였다. 수요집회 주최 측에서 나눠준 호소문에는 ‘종군위안부’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은 일본정부가 일본군의 성적 대상이 되었던 여성들을 지칭할 때 쓰고 있다. 이 용어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왜냐하면 ‘종군위안부’라는 말에는 종군기자, 종군간호부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다녔다는 의미가 내포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강제동원의 경험을 부정한다. 또 ‘종군위안부’라고 부르는 것은 ‘위안’을 받은 일본 군인을 주체로 하여 붙인 명칭일 뿐이다. 그 여성들의 경우 군인들에게 ‘위안’을 제공하는 행위는 대부분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고통중의 고통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명칭인 것이다.

  현재 한국 관계법령에서는 일본군 위안소에 연행되어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쓰고 있다. 사실 ‘위안부’란 용어도 전적으로 일본군의 입장을 반영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 현재는 위안소 제도를 통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으로, 강제적으로 성적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는 차원에서 일본군 성노예(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는 국제적인 용어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후손에게는 같은 역사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며 위안부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집회에 참가한다던 위안부할머니들. 우리정부의 방관, 일본정부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폭로하고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흔들림 없는 의지로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노란 우산, 노란 손수건, 노란 모자 등을 볼 때면 잠시마나 위안부할머니들의 상처가 떠오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정말 모르겠다.

이민호 기자 sksdlals@dankook.ac.kr

사진: 신해원 기자adelashi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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