傍若無人
傍若無人
  • 조상우(교양학부)교수
  • 승인 2009.11.29 16:52
  • 호수 12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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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傍若無人

;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으로,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傍 : 곁 방, 若 : 같을 약, 無 : 없을 무, 人 : 사람 인

 

 

 요즘 방송을 보면서 앞으로 어느 내용까지 방송에서 허용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 KBS의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 여대생이 남자들의 키에 대해서 말한 것이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날 여대생들은 남성의 키가 최소한 하이힐을 신은 여성보다는 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한 여대생은 남성의 키는 자존심이고 성공의 요건이라며, 키가 작은 사람은 실패자라고까지 말을 하였습니다. MC는 이 발언에 대해서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개인적인 견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여대생과 함께 생방송이 아닌 녹화방송에서 여대생의 말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에 내보낸 프로그램 담당자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저도 우연히 그 방송을 보았는데, 외국 미녀들에 비해 우리의 여대생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리 옳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들을 보며 느낀 것은 “아이고 저 철딱서니 하고는 ㅉㅉ” 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여대생들이 하는 말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몰랐고, 그것이 자연스런 것인 냥 얘기하는 것에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SBS의 <강심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일반인들이 알 지 못하는 지인들의 재미있거나 우스운 일을 이야기하며 고발(?)하는 토크쇼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지인을 고발하고 자신이 느낀 것을 얘기하면서 약간의 감동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목표물로 놓고 집중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은 방송인 장나라가 나와서 아버지가 투자한 영화에 돈을 대기 위해 자신이 중국에 활동하러 자주 나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지금 중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말이 어떠한 파급효과가 있을 지 한 번 더 생각한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했으면 합니다. 방송이라면 더 신중을 기해야겠지요.
이와 관련한 말이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옵니다.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었으며, 문학과 무예에 능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위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건의를 피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 연(燕)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며 현인과 호걸을 사귀었다고 합니다.


그 사귄 사람들 중에 연나라 사람으로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가 있었데, 형가와 고점리는 호흡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벌이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방가도 하고 감정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했답니다. 이때 이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傍若無人] 행동했다고 합니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 없는 당당한 태도를 말하였는데, 이후 그 뜻이 조금씩 변하여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고 있습니다.


이후 형가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만을 위해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연나라의 태자 단(丹)은 진시황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형가에게 진시황 암살을 부탁했습니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의 암살을 기도하였지만 진시황의 암살은 실패했고, 그는 진시황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형가의 삶은 비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하다가 죽었기에 만족한 삶이라 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주위 사람들을 생각했더라면 그 삶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요즘 정부의 ‘세종시’ 정책도 이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번 정해진 정책이라면 국민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그대로 시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이 더 옳다고 하여 국민정서를 외면 한 채 새로운 정책을 펼치려고 합니다. 그것도 그 고장 출신의 총리를 기용해서 말입니다. 지금의 위정자들에게는 국민들이 보이지 않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만 보이는 듯 합니다. 고점리와 형가가 술판을 벌이며 비파를 켜고, 춤출 때처럼 말입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글은 퇴고(推敲)를 거쳐 수정을 할 수 있지만, 말은 그것이 안 됩니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군자는 “일을 민첩히 하고 말을 삼가며(敏於事而愼於言)”라고 하여 스스로 옳다고 여기지 말고 반드시 도가 있는 사람에게 그 옳고 그름을 질정하라고 하셨습니다. 학생들이 마음에 먹은대로 편히 얘기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리고 내 생각만이 옳다고 상대방에게 내 생각대로 하라고 하지 마세요. 그들의 생각이 옳을 때가 있으니까요. 주위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기 바랍니다.

조상우(교양학부)교수
조상우(교양학부)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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